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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02. 2021

[아이필프리티] But you don’t have to

모든 여성은 아름답다는 말의 폭력성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는 나는 초등학생 시절까진 동생보다 머리카락만 더 길었을 뿐, 옷차림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동생과 색깔만 다른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동생하고 사이가 너무 좋아서 그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다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남아들의 활동적이고 편한, 그리고 장식적인 면이 덜한 옷이 좋았을 뿐이다.


이처럼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나였기에 어머니가 어쩌다 원피스를 입히기라도 하면 어색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괜히 창피했고, 무엇보다 나답지 않게 느껴졌다. 당시엔 너무 어려 인식하지 못했지만, 여아와 남아들의 옷차림에는 각각 분명한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여아들만 입는 옷이 드러내는 이미지가 싫었다.


그랬던 내가 나의 외모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이때가 본격적으로 사회화가 진행되는 때라고 생각한다. 슬슬 주관이 잡혀가면서도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바로 그때부터 나의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가 시작되었다.



• 우린 모두 아름다워요.


영화 ‘아이 필 프리티 (I feel pretty)’의 주인공 르네는 화장품 회사 '릴리 르클레어'의 웹사이트 관리 직원으로, 자신의 일에 책임감도 있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유쾌한 성격을 지녔다. 그런 그는 자신의 통통한 몸매가 콤플렉스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한숨이 나오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것조차 외모 때문에 즐겁지 않다. 스피닝 학원에 등록하러 가서 조차 날씬한 몸매의 다른 회원들 사이에서 위축이 된다.


그렇게 왠지 모를 굴욕을 무릅쓰고 운동을 시작한 르네. 열심히 스피닝을 하던 중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그는 이후 어떤 변화를 감지한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모델처럼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는 관찰자인 우리의 눈에는 르네의 모습은 그대로다. 다만 그의 태도가 변했을 뿐.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르네. (뒤쪽 스피닝 학원 직원과의 티키타카가 제법 웃기다.)


이제 르네는 남들의 반응과 태도도 예전과는 다르게 느끼기 시작한다. 가게에 들어가려던 남자가 문을 잡자 자신을 위해 매너를 발휘했다고 착각하고, 공사장 인부가 휘파람을 불자 자신을 향한 캣 콜링으로 오해하며, 세탁소에서 남자 손님이 대기 번호를 묻자(What’s your number?) 플러팅으로 인식하는 식이다.


자신이 누가 봐도 아름답다도 확신하는 르네는 어떤 면에선 잘 됐다 싶으면서도, 가끔은 지나치게 넘치는 자신감을 자랑한다. 그 자신감 덕분에 그는 외모를 따지기로 유명한, ‘릴리 르클레어’의 본사 안내 직원 자리를 꿰차고, 우연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되면서 세컨드 라인 론칭 멤버로 합류까지 하게 된다.


(왼쪽) 릴리 르클레어 본사의 안내 데스크 직원이 된 르네 / (오른쪽) 릴리 르클레어의 대표 및 본사 직원들


‘누군가 중요한 걸 규정해 주고, 그 울타리에서 자라죠.’


우여곡절 끝에 르네는 자신의 모습은 계속 그대로였으며, 결국 모든 건 자신감 문제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영화 후반부 세컨드 라인 론칭 행사에 온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언급한다. 르네가 얘기하는 규정과 울타리란 곧 사회에서 임의로 만들어낸 미적 기준이다. 단언컨대 이러한 미적 기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여성은 아무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화가 주입한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르네의 메시지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한 마디는 무작정 긍정하기에는 어쩐지 망설여진다.


‘우린 아름다워요.’


주관적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다. 나 역시 한때 이러한 메시지에 감동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우린 아름다워야 할 이유도,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 자신의 외모를 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


누군가는 말한다. 여자가 예뻐지고 싶은 것은 본능이라고. 그렇다면 왜 동물들은 암컷이 아닌 수컷이 화려함을 담당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여성의 꾸밈이 본능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본능이란 어떤 교육이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선천적인 무언가 인데, 내가 꾸미기 시작한 경위를 생각하면 죄다 남에게서 보고 듣고 배워서 행한 것들이다. 이렇게 영향을 받은 나 역시 다른 여성의 꾸밈을 종용했으리라.


외모에 돈과 시간, 에너지를 투자하면서 나는 선머슴에서 ‘진정한 여자’로 거듭났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너도 여자구나, 예뻐졌다, 같은 말들이 뒤따랐다. 그런데 내가 봐도, 남들이 보아도 긍정적이기만 한 변화를 겪는 동안, 웬일인지 나의 자존감은 자꾸만 떨어졌다.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거울을 보는 시간도 늘었다. 그러자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거슬렸다. 쌍꺼풀이 얇은 눈은 충분히 커 보이지 않았고, 볼륨 없는 입술은 섹시하지 않게 느껴졌으며, 동양인 평균 피부색 또한 못마땅했다. 그중 가장 큰 불만은 연예인처럼 마르지 않은 몸이었다.


어느새 나는 거울을 볼 때, ‘자기혐오’라는 필터를 장착한 채 내 외모를 나노 단위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너만 하면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달래 줘도 들리지 않았다. 내 눈에도 이렇게 별로인데, 다른 이들의 위로는 전부 빈말 같았다. 급기야 나는 내 사소한 불행들을 모두 외모 탓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내 외모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싫어졌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한 장면


이랬던 내가 또 한 번 변하게 된 계기는 바로 심리 상담이었다. 꽤 큰 비용이 들었지만 내가 살면서 했던 소비 혹은 투자 중 가장 가치 있었다. 상담을 통해 나는 내가 예뻐야 하고, 남들 눈에도 예뻐 보여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집착을 마침내 버렸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까지 아름다움에 목을 맸는지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


영화, 광고, 드라마 등 모든 미디어에선 군살 없이 날씬한 몸매에 완벽하게 가꿔진 특정 연령대의 여성들을 끊임없이 노출한다. 이러한 전형성에서 벗어난 여성들도 있긴 하지만, 미디어가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보통 무례하다. 아름다운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들 간의 대우 차이를 보며, 미디어 바깥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주입당한다. '예뻐져라, 그렇다면 너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이 메시지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여기서 벗어난 후에야 마침내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뷰티 업계는 여성의 콤플렉스를 자극해야만 그들의 사업을 키울 수 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돈을 벌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강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은 더 이상 대놓고 여성의 콤플렉스를 자극하진 않는다. 대신 여성들이 주체적인 선택으로 예뻐지길 원한다고 포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말을 속삭여도, 여성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지갑을 열게끔 부추긴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저의를 알기에 여성은 모두 아름답다는, 끝까지 여성과 아름다움을 떼어 놓지 않는 사탕발림이 탐탁지만은 않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한 장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는 가치중립적인 태도이다. 쌍꺼풀이 있건 없건, 피부색의 희건 검건, 키가 크건 작건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판단하지 않는, 쉽게 말해 별 생각이 없는 상태. 물론 개인적인 선호에 따른 직관적 감상은 발생할 수 있다. 아쉽게도 본인의 외모가 그 선호에 들어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 자체가 부재한다면 상관없다. 내 얼굴은 그저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얼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덤덤하게 인정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린 아름다워야 할 이유도,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세상에 보이는 객체가 아닌, 세상을 보는 주체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9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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