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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n 25. 2021

[프란시스 하] 조금 아쉽지만 결국 웃을 수 있기를

꼭 나쁘지만은 않은 차선책에 관한 이야기



영화나 소설을 감상하다 보면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에 자연스럽게 이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상황을 잘 헤쳐 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현실의 지인들이 느끼는 감정에 이입하는 데는 애를 먹는 편이지만, 가상 세계 속 인물에 나를 대입하는 일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


물론 이러한 이입은 주인공의 도덕적인 문제가 심각하지 않고(영화 전개를 위한 경범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혹은 객관적으로 악인인 것은 캐릭터 설정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을 경우, 나와 그의 가치관이 상충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다. 비슷하게 인구 감축을 주장했으나 제거 대상에 있어서 있는 자 없는 자 가리지 않았던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에는 공감이 갔지만,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발렌타인’은 인정할 수 없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 어떤 인물보다도 나 자신을 깊고 강렬하게 투영했으며, 보는 내내 스크린 속 나 자신을 보는 것처럼 응원할 수밖에 없던 영화 속 주인공이 한 명 있다. 바로 영화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 할러데이이다.


그 유명한 뉴요커이자 27살의 청춘인 프란시스는 뉴욕에서 무용수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룸메이트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 소피와 더할 나위 없는 동거 생활을 즐기고 있으며, 남자 친구와의 사이도 좋은 편이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베스트 프렌드이자 룸메이트인 소피와 프란시스


안타깝게도 무용수로서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올 기미가 없고, 집 재계약을 앞두었을 때 소피는 다른 친구와 살기로 했다면서 프란시스를 떠나 버린다. 정작 그는 혼자 남을 친구를 위해 같이 살자던 남자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별까지 겪었는데 말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프란시스의 하루하루는 그의 마음 같지 않다. 다시 구한 동거인들과의 생활은 기대와 다르고, 오랜만의 가족과의 만남 뒤에 느껴지는 감정도 어쩐지 개운치 못하다. 극단의 전속 무용수이자 동료 레이첼이 초대한 자리에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자꾸만 위축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프란시스와 새로운 룸메이트들


꿈도, 우정도, 연애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프란시스에게 가장 버거운 문제는 그런 야속한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 그 자체인 듯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와중에도 프란시스는 뉴욕을, 그리고 자신의 꿈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 아프니까 청춘일까


‘프란시스 하’를 처음 볼 당시 나 역시 분야만 달랐을 뿐, 한창 진로를 고민 중인 비슷한 또래였던 탓일까.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과장 보태 감독인 노아 바움백이 민간인 사찰이라도 한 줄 알았다.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전공을 살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이왕이면 대기업이나 TV에 종종 나오곤 하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에 속한. 그러나 소위 말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냉정하게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던 걸까. 나의 간절했던 바람 역시 프란시스의 꿈처럼 도통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고가 눈에 띄는 족족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넣고,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봤지만 1차 서류 합격이 최대였고, 2차 서류 전형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나마도 아예 ‘서류 광탈’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규모가 좀 더 작은 회사의 경우 면접까지는 가 보았으나 이 이상으로는 진전이 없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공고 자체가 없거나, 있더라도 당당하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곳뿐이었다. 


취업만 힘들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때 사귀던 남자 친구와 위태위태하다가 결국 끝을 본 참이었고,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친구에게 하루하루 서운함이 쌓여 가고 있었다. 게다가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사촌과 은근히 비교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생일도 고작 두 달 차이다.) 졸업 후 백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자존감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은 하루하루였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뭐 그런 건가. 그 시기를 떠올릴 때면 오로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안 그래도 영화 속 인물에 한해 굉장히 이입을 잘했던 내가, 뉴욕에 살고 있는 프란시스에게서 서울에서 벗어나 본 적이라곤 없던 나 자신을 발견했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



• 결국 웃을 수 있기를


영화 속 프란시스가 결국 택하는 길은 그가 처음부터 꿈꿔왔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무용수가 되는 대신 안무 창작가가 되었으며, 또 다른 로맨스 같은 건 찾아오지 않았다. 룸메이트이기 전에 소울메이트나 마찬가지였던 소피와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집을 마련한 프란시스는 미소 짓는다. 비록 ‘할러데이(Halladay)’이라는 성씨가 너무 길어 뒷부분이 잘린 탓에, 우편함 이름표에는 ‘프란시스 하(Frances Ha)’까지만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차선이고, 타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법 행복해 보인다.


'프란시스 하'의 한 장면


이게 바로 과몰입인가 싶긴 하지만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라던 것처럼 대기업의 패션 디자이너 같은 건 되지 못했고, 대신 의류 무역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또 한 차례 변화가 찾아와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투잡러의 신세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지금의 이런 생활이 나는 전혀 나쁘지 않다.


마침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았고, 혼자서도 완전하고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으며, 어린 마음에 속 좁게 굴었던 그 친구와는 이제 가족보다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좀먹지 않으며, 누군가 나를 남들과 비교하더라도 별로 괘념치 않는다. 언제든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배달 음식을 시킬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은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이 더욱 기대가 된다. 그리고 멈춰 있는 포스터 속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프란시스에게 묻고 싶어 진다.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거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7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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