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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Sep 30. 2022

[죽어야 사는 여자] 누가 그들을 비난하는가

여성의 외모 강박, 그 시발점






젊음, 어림, 청춘 같은 단어들과 나이 듦, 노인 같은 말들이 지닌 이미지와 느낌은 분명 전혀 다르다. 특별하거나 혹은 불행한 변수가 있지 않은 이상 전자에서 후자로의 변화는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피부는 점점 탄력을 잃고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날 것이고, 새까맣던 머리칼은 회색빛이 되더니 이내 아무런 색도 가지지 못하리라.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눈도 침침해지고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에 가는 일이 당연해진다. 그래도 나이와 주름이 하나둘 쌓여감에 따라 마음과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시야는 더욱 넓어진다. (평생 변치 않는 이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는 나이 들어가는 일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나만 해도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분명 그때는 없던, 평생 매끈할 줄로만 알았던 피부 위에 생긴 잔주름들이 보인다. 주변 친구들도 슬슬 주름에 대한 불만과 걱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입을 다물라고 하고 싶다. 객관적으로 아직 그렇게 두려워할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마침내 노화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속 뱀파이어가 아닌 바에야 피할 수 없는 노릇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우는 소릴 해봤자 얻을 것은 스트레스뿐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친구들에게서 애써 털어버렸던 외모에 대한 강박이 전이되는 일이다. 이기적이지만 남들이 하는 걱정을 나만은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다 같이 아름다움에, 특히나 젊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다면 가장 이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TV를 틀면,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리고 거리를 나서면 우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젊어져라, 여자가 늙는 것은 죄이므로.



• 영원한 젊은과 아름다움을 하여


매번 매들린에게 남자 친구를 뺏겨온 헬렌. 헬렌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자 성형외과 의사인 어니스트 역시 유혹에 흔들릴지 알아보기 위해 그를 매들린의 공연에 데리고 간다. 아니나 다를까 어니스트는 매들린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이에 상처받은 헬렌은 마음도 다치고 외모도 망가진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정작 결혼에 성공한 매들린과 어니스트의 사이는 점점 나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매들린도 배우 일을 제대로 못하고, 어니스트는 성형외과 의사 일을 그만두고 장의사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매들린은 헬렌으로부터 그의 새 책 ‘젊음이여 영원하라’의 출간 기념회에 초대받는다. 초대에 응하기 위해 피부 관리까지 받으러 간 매들린에게 그곳의 실장인 샤갈은 웬 명함 하나를 건넨다. 샤갈은 명함의 주인공 리즐 폰 루만에게 찾아가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매들린은 이를 흘려듣더니 명함을 찢어 버린다.


그리고 찾아온 출간 기념회 날, 완전히 엉망인 모습의 헬렌을 예상했던 매들린. 그러나 완벽한 외모로 탈바꿈한 헬렌을 목격한 매들린은 충격을 받고 결국 그 길로 리즐을 찾아간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의 리즐은 무려 71세. 그는 자신의 비법이라며 마법의 묘약을 보여준다. 매들린은 처음에 터무니없는 약의 가격에 놀라지만 리즐이 살짝 효과를 맛보게 해주자 결국 약을 구입한다. 그리고 매들린이 마침내 약을 들이켠 순간 리즐은 경고한다.


‘몸 관리 잘해요. 당신과 당신의 몸은 아주 오래 함께할 거니까. 소중히 다뤄요. 영원히 살지니.’


매들린 (왼쪽)과 헬렌 (오른쪽)


약을 들이켜기 무섭게 매들린의 피부는 팽팽해지고, 몸매도 탄력 있어진다. 그동안 집까지 찾아가 어니스트를 유혹하는 헬렌. 둘은 이내 매들린을 살해할 계획까지 세운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매들린과의 말싸움 도중 홧김에 그를 계단에서 밀어 버리고, 매들린은 온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채 죽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매들린이 되살아난 후 헬렌이 집에 들이닥치고, 두 친구의 몸싸움은 격해진다. 그러나 매들린의 목이 꺾이고 헬렌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나도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매들린의 묘약을 마신 탓. 장의사인 어니스트의 도움을 받아 손상된 피부와 몸을 수리한 두 친구는 이내 깨닫는다. 영원히 죽지 않는 그들에게는 영원히 어니스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국 둘은 합심해 어니스트에게도 묘약을 먹일 계획을 꾸민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매들린과 헬렌




• 기만적인 메시지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의 엔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웃프다'. 결국 매들린과 헬렌은 어니스트에게 묘약을 먹이는 데 실패하고, 어설프게 그의 기술을 따라하며 서로의 망가진 외모를 보수해주며 지낸다. 둘에게서 달아난 어니스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표준적인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웃프던 감정은 이내 불쾌한 무언가로 변한다. 하루에도 숱하게 마주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비만 관리 센터 광고의 모델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 광고들의 타깃이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의 피부와 얼굴과 몸매를 이상적으로 변화시켜 준다는 전문의들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본인은 머리가 벗어진 데다, 술로 인해 몸매도 완전히 망가졌으면서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을 시켜주어 돈을 벌어온 영화 속 어니스트가 떠오른다.


리즐과 어니스트


장의사로 직업이 바뀌기 전까지 어니스트가 성형외과 의사로서 돈을 벌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불만과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여성들에게서 이러한 감정들을 부추겨 돈을 벌어 호의호식했던 어니스트가 매들린과 헬렌을 뒤로하고 혼자서만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어니스트처럼 외모와 젊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웃음으로 얼버무린 영화가 던지는 훈수로 인해 끝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아름답고 싶은 것은 여성의 본능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본능이란 어떤 생물 조직체가 선천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동작이나 운동으로, 태어난 후에 경험이나 교육에 의지하지 않은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이다. 과연 여성들이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고, 성형을 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눕는 것이 선천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일까. 그렇다면 왜 동물들은 수컷이 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지 묻는 일은 이제 지겹다.


앞서 언급한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광고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주기 위해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곳곳에 심어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성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은 그 산업에서 일하는 남성들에게 흘러들어 간다. 냉정하게 아직 대부분의 자본은 남성들이 쥐고 있기에 드물게 해당 업계에서 성공한 여성들이 있다 한들 여자들이 같은 여자가 돈을 벌 게 해주었다고 보긴 무리가 있다. 그렇게 해서 성취한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는 본인이 아닌 타자, 정확히는 남성들이 누릴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얼굴을 자세히 뜯어볼 수 있는 거울과 자신과 비교할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여성들이 외모에 강박을 느낄 리 없기에, 외모를 가꾸는 일이 남들의 시선과 관계없는 자기만족적 행위라는 말은 성립하기 힘들다. 설령 타인의 시선이 계산에 없었다 하더라도, 모든 여성들이 아름다워지려 애쓰는 세상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그들의 발전한 외모를 감상 및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남성들이다.


여성 본인이 무엇을 얼마나 원했든 결과는 동일하다.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는 새로운 상품을 팔기 위해 여성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콤플렉스를 안겨줄 것이고, 만족스러운 외모로 가는 길은 어김없이 더 멀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도 여성이 지는 게임인 것이다. 그 길에서 아예 벗어나 버리지 않는 이상은 여성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 나 역시 겪어 보았지만 외모에 대한 강박은 자기자신을 외부 세계와 차단한 채,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는 이상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믿는 나 역시 약간의 부추김에도 종종 마음이 흔들린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말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사실이다. 대신 이 말을 조금 바꾸어 보고 싶다. 자신의 내면을 좀 더 돌보아 주라고 말이다. 내면의 공허와 불안, 우울을 해결하고 나면 외모는 정말로 덜 중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과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다.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이 기만적인 게임을, 더욱더 많은 여성들이 그만두기를 바라본다.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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