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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21. 2023

[아이 엠 러브] 사랑과 함께 자유로워지다

가장 가까운 이방인






집에서 차례를 지낼 때마다 기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할아버지의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는 순서 때문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겠다. 아버지와 삼촌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인 것은 항상 고정불변이었다. 그다음 순서는 참석자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고모가 참석할 경우 세 번째로 절을 할 때도 있었고, 나로서는 언짢게도 남동생이 세 번째일 때도 있었다. 몇 번쯤 남동생의 순서 다음에야 나와 여자 사촌들을 한꺼 번에 절을 시킨 적이 있었고, 그동안 약간씩 불만을 표했던 나는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크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와 나 모두 감정이 격해진 그날 이후, 그래도 본인 세대 남성들에 비해 훨씬 생각이 열려 있는 나의 아버지는 나의 의견을 수용해 차례 방식을 바꾸었다.


여전히 아버지와 삼촌부터 시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대신 나를 비롯해 남동생, 그리고 사촌들은 이제 함께 절을 한다. 고모가 참석할 경우 보통 삼촌의 다음 순서이다. 그러나 차례 준비를 위해 주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어머니의 순서는 항상 뒤쪽이었다. 당연히 아버지나 삼촌보다 뒷 순서였고, 내가 아버지에게 감히 따지고 들기 전에는 고모는 물론 남동생의 다음이었다. 심지어는 나와 사촌들이 절을 마친 제일 마지막 순서인 적도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위치는 결코 아버지보다 못하지 않으며, 남동생보다 우선한다. (동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마 동생도 피차일반일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명절 같은 날, 가족과 친척들이 모일 때면 어쩐지 어머니의 순서는 뭐든 뒤로 밀린다.


어머니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며느리들은 명절이면 친정보단 으레 남편을 통해 엮인 식구들을 먼저 보러 온다는 사실은 이미 나조차 무뎌졌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유난히 차별적인 분위기인 것도 아니다. 며느리들은 일만 열심히 해놓고 정작 차례에는 참여도 못하거나, 밥은 나머지 식구들을 모두 챙긴 후 뒤늦게 작은 상에서 따로 먹고, 명절 마지막 날에야 눈치를 보며 친정에 가야 하는 집이 아직도 존재한다. 또 한 가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식구 중 누군가 우리 집안사람들이 어쩌고 하면서 떠들 때마다, 며느리인 어머니는 그 ‘우리 집안사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자신과 남편의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은 나와 남동생과도 성씨를 공유하지 않는다. (부인도 남편의 성씨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랑이 는’ 키 家, 그리든 걸 버리고 떠나온 한


나고 자란 러시아를 떠나 남편을 따라 이탈리아에 정착하게 된 엠마는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을 느끼며 지낸다. 그러다 마침 시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엠마의 집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일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오랫동안 경영해 온 레키 가문의 공장의 후계자로서 엠마의 남편과 첫째 아들 에도를 임명한다. 모두가 둘을 축하하기 바쁘고 한껏 들뜬 분위기 속에서 홀로 피로감을 느낀 엠마. 결국 조용히 쉬러 방으로 올라가던 도중, 에도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기 위해 찾아온 요리사 친구 안토니오를 마주친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엠마와 안토니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안토니오와 함께 식당 개업을 준비 중인 에도는 가족들의 식사 자리를 위해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를 계기로 엠마와 안토니오는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그렇게 몇 번쯤 더 두 사람이 마주치고 어느 날, 엠마는 외출 중에 우연히 안토니오를 발견해 그의 뒤를 밟고,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은 홀린 듯 입을 맞춘다. 그날 이후 불 같은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둘. 안토니오의 집에 들를 때마다 어머니의 흔적이 보임에도 무시하던 에도. 하지만 또 한 번 엠마의 가족들에게 고용된 식사 자리에서 안토니오가 그동안 엠마가 에도에게 만들어주던 ‘우하’를 메뉴로 내오고, 그는 마침내 어머니와 친구관계를 눈치챈다.



마침내 인형박차나오


영화의 제목에 ‘러브’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주인공 엠마가 결국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을 택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현실로 끌고 와 냉정히, 그리고 간단히 말하자면 가정이 파탄 난 것이나 다름없다. 자녀가 없거나, 그들이 아직 어릴 때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된 상황에서 중년에 접어든 아내가 오랜 기간 함께 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택하다니.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꿈을 꿨던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 엠 러브’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고, 불륜을 미화하는 작품 또한 아니다. 이 영화는 오랜 시간 화려한 집안에 갇혀 고독에 숨 막혀하던 한 여자가 마침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방하는 이야기이다.


러시아에서 평범한 생활을 헤오 던 엠마와 달리 집안 대대로 이탈리아에서 큰 공장을 운영하던 탠크레디는 분명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결혼 후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저택이 이를 예상하게 한다. 때문에 엠마는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지닌, 그리고 가장이자 남편이 될 탠크레디를 따라 자신을 구성하던 모든 것을 고향에 남겨 두고 따라나서야 했으리라. 생각하기에 따라 이러한 엠마가 운이 좋다고 느낄지 모른다. 한때 ‘김치녀’나 ‘된장녀’ 만큼이나 유행하던, 여성혐오적 표현인 ‘취집’(시집과 취직의 합성어)에 대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엠마와 딸 엘리자베타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잠재우려 애써오던 엠마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더 있다. 바로 남편의 가족들에게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그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긴 삼 남매가 장성할 때까지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이처럼 오랜 시간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던 끝에, 고향에서 불리던 원래 이름인 키티쉬는 잊히고, 남편이 새로 지어 준 이름인 엠마만 남게 다. 그렇게 모든 호흡에 고독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지내던 어느 날, 엠마는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만난다. 안토니오는 엠마도 모르는 새 그의 가슴속에 잠자던 욕구를 깨우고, 그는 결국 일생일대의 일탈을 하게 된다. 아니, 엠마의 인생 처음으로 온전히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엠 러브’가 외도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니듯, 나 또한 어머니들이 남편과 가족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거나 모든 걸 버리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가정을 꾸리면 되는 남편들과, 자신이 있던 곳을 떠나 남편과 그의 가족에 맞추어 스스로를 바꾸어야 하는 아내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마침내 인형의 집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엠마로 인해 다른 식구들이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유일하게 그에게 웃음 지어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딸 엘리자베타였다. 나 또한 누군가의 딸로서, 엠마와 엘리자베타 사이에 오간 미소가 놀랍지 않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3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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