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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07. 2023

[E.T.] 낯선 존재에게 기꺼이 내미는 손

그 완벽한 호의, 그리고 순수함에 관하여






한 번 상상해 보자. 눈앞에서 외계인을 마주하는 상황을. 그가 어디에서 왔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구 출신 생명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구인과 외모가 완전히 다른 것은 물론, 의사소통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미디어 속 이미지에 따르면) 외계인은 지적 생명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안겨준다. 당장 지구 바깥에 어떤 신호와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아마 나라면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을 듯하다. 나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전제 하에. 아니,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나을까.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지구 바깥에도 생명체, 즉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쳐 왔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에서의 생명의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주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증거에는 가까워진 듯하나 외계 생명체 그 자체는 아직 발견하기 전이다. 어쩌면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외계인들이 본인들이 거주하는 행성의 모든 것을 착취하고 망가뜨리는 중인 오만한 지구인들로부터 일부러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인간들이 득달같이 자신들의 행성에 찾아와 그들의 것 역시 파괴할지 모르니까.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아직 확언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나 책에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온 것이리라.



친절한 이방인


깊은 숲 속에 외계인이 탄 우주선이 착륙한다. 외계인들이 잠시 숲 속을 둘러보던 중, 낯선 차량이 등장하고 곧이어 사람들이 내리자 외계인들 중 한 명이 다른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덕분에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외계인들은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신호를 보내 동료들을 구한 외계인은 뒤처져 홀로 남겨진다. 한편 어린 소년 엘리엇은 가족들, 그리고 형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무언가 수상한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난 창고로 갔다가 무심결에 엘리엇은 눈앞에 보이는 공을 창고 쪽으로 걷어 차고, 그러자 마치 누군가 다시 바깥을 향해 찬 듯 공이 그에게 돌아온다. 창고에 무언가 있다는 엘리엇의 말에 모두들 공구 창고로 향했다가 수상한 발자국을 발견하지만, 코요테의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티가 타고 온 우주선 / 엘리엇의 집에 숨어든 이티


하지만 엘리엇은 어딘지 석연치 않다. 결국 그는 다시 창고향하고, 놀랍게도 그곳에 숨어 있던 외계인을 발견한다. 우여곡절 끝에 외계인을 방으로 데리고 온 엘리엇. 넋이 나가 서로를 관찰하던 , 어느 순간부터 외계인은 엘리엇과 동기와가 된 듯 그의 행동을 따라 한다. 다음 날 엘리엇은 신이 나서 형과 여동생에게 외계인을 소개하고, 이내 외계인에게 이티(E.T.)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아이들과 계속 단어와 알파벳으로 소통하던 이티는 이렇게 말한다. ‘이티, 집, 전화’. 마침내 아이들은 이티가 집에 자신의 집에 전화를 걸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위해 통신기기까지 만들어 준다. 그렇게 이티와 아이들이 가까워지는 동안, 이티의 흔적을 찾기 위한 수상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마침내 엘리엇의 집이 도청되기에 이른다.


이티를 찾아다니는 어른들



화합, 소통, 교감가능하는 것


외계인에 대해 다루는 영화들은 웬일인지 비극적이고 끔찍한 전개인 것들이 다. 그 대표 격인 영화가 바로 '에이리언' 시리즈이다. 지구인들은 괜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다른 행성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뼈도 못 추린다. 이뿐만 아니라, '라이프'에서도 탐사대들은 귀여운 취급하던 외계 생명체에게 호되게 당한다. 지구인들이 감히 우주 바깥으로 나갔을 때만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프레이' 시리즈와 '우주 생명체 블롭', '신체 강탈자의 침입' 같은 영화들의 경우 인간들은 얌전히 지구에 있는데 외계인들이 찾아와 해를 가한다. 이와 같은 외계인 관련 영화들의 경향을 보건대,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 않은) 외계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좀 더 정확히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짙게 깔려 있다.


엘리엇 / 거티 / 마이크


그런 의미에서 ‘E.T.’는 색다르게 느껴진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감상 전에도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 알고 있었음에도,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외계인 이티도, 지구인 엘리엇도 모두 처음에는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남의 동네에만 던져져도 덜컥 불안해질 텐데, 아예 다른 행성에 던져지고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확실한 누군가를 마주쳤는데 겁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나 둘은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 상대방의 소통 방식을 배우고, 언어를 익혔으며, 마침내는 친구가 된다. 같은 지구인, 같은 나라에 사는 국민, 한 집에 사는 가족마저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건만, 이티와 엘리엇은 어떻게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서로에 대한 호의와 마음속에 간직한 순수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주인공인 엘리엇이 어린아이인 것은 당연하다. 외계인은 어떨지 몰라도 인간 어른이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존재에 호의를 보인다거나, 일정 나이까지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다. 엘리엇은 이와 같은 호의와 순수함을 통해, 이티와 교감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미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있어서 이티의 존재와 두 사람의 소통 방식은 그저 실험과 조사의 대상일 뿐이다. 아마 이티 또한 본인의 행성에 엘리엇과 같은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들이 들이닥쳤다면 ‘에이리언’ 시리즈의 에이리언처럼 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지구에서 엘레엇의 순수함과 사랑을 느낀 이티는 마침내 집으로 떠나기 전, 훌륭하게 익힌 지구의 언어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여기 있을게.’


마침내 지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이티


아무래도 80년대 영화이다 보니 지금의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나,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 그러나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는 다른 행성 출신의 두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모든 것을 초월한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다. 나도 엘리엇과 같은 순수함을 간직해서 언젠가는 이티와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너무 과한 바람일까. 일단 나의 마음속에 순수함이 여전히 남이 있기는 하는지부터 들여다봐야겠다.


영화 'E.T.'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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