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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27. 2023

[바비] 영화로 보는 분홍빛 이갈리아의 딸들

공감과 이입의 방향을 잃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나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소설이 있다. 바로 ‘이갈리아의 딸들’이다. 이제는 절판된 요즘의 세련된 표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마치 부모님의 책장에서 찾을 법한 리커버 이전 디자인의 책으로 읽었더랬다. 첫 챕터를 읽던 그 순간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어디서 몇 시쯤 읽었는지까지 기억이 난다. 오전 영어 회화 학원 수업을 수강한 후, 점심을 때우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겸 혼자 들른 커피빈 매장에서였다. 주말임에도 한적했던 카페에서 오후 햇살을 받고,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며 그 엄청난 책을 펼쳐 들었다.


출간된 지도 오래되었고, 한국에서 다시 한번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만큼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 혹은 페미니즘이 꼭 필요한 인권 사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지 않았대도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경우 스토리 자체나 이야기 속 특정 사건 혹은 등장인물보다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속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완전히 전복시킨 콘셉트가 핵심이다. 이갈리아에선 집안의 가장은 당연히 여성이고, 모든 요직은 여성이 맡는다. 반대로 남성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지적 욕구나 야심을 좇기보다는 여성을 뒷바라지하는 위치에 만족하게끔 교육된다.


현실과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책의 장르가 SF는 아니기에 여전히 포궁을 지닌 여성이 출산을 한다는 점 정도. 하지만 현실의 여성들이 출산 이후 남들 다 낳는 애 좀 나았다고 유세라는 핀잔을 듣거나, 맘충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것과 달리 ‘이갈리아의 딸들’에서의 출산은 영웅적 행위와 같다. 남성에게 그들이 평생 독식한 권리와 특권을 공정하게 나누어 달라고 요구해야만 하는 처지인 현실의 여성들과, 기득권으로서 모든 것을 당연하게 누리는 ‘이갈리아의 딸들’의 대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현실과 반대되는 가상의 여존남비 가모장제 사회의 여성들을 보며 카타르시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얼마 가지 않았다. 현실 속 나의 위치는 이갈리아의 딸들이 아닌, 바로 아들들이었기에. 최근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한 영화가 있다. 바로 바비 인형을 실사화한 작품, ‘바비’가 그것이다.




•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하지만 켄은?


모든 날이 최고의 날인 바비 랜드에서 살고 있는 금발의 ‘전형적인 바비’. 사랑하는 다른 바비 친구들은 대통령, 대법관, 의사, 물리학자, 우주비행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전형적인 바비는 매일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만나며 즐겁고 자기애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밤마다 댄스파티를 열고, 여자들만의 잠옷 파티를 하는 것도 잊지 않으며. 그리고 굳게 믿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바비 랜드의 바비들 덕분에 현실 세계의 여성들 역시 언제나 행복하고, 힘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그런 바비만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금발의 켄이다. 언제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바비와 달리 켄은 오직 바비의 관심과 사랑만을 갈구한다. 다른 켄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완벽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전형적인 바비는 친구들과 신나게 춤을 추다 무의식적으로 묻는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바비의 질문에 충격받은 듯 친구들 사이엔 정적이 흐르고, 스스로의 질문에 놀란 바비는 이 일을 잊으려 하지만 이후로도 이상한 일들이 이어진다. 인형답게 항상 발꿈치가 들려있던 발이 평평해지지를 않나, 없던 셀룰라이트가 생기고, 아침에 일어나선 입냄새까지 난다. 전형적인 바비는 자꾸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받고자 은둔 생활 중인 ‘이상한 바비’를 찾아간다. 그렇게 찾아온 전형적인 바비에게 이상한 바비는 말한다. 전형적인 바비가 바비 랜드와 현실 세계 사이의 포털을 열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그리고 마침내 전형적인 바비는, 완벽했던 삶을 뒤로하고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달리는 차의 뒷좌석에 켄이 몰래 탔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 나는 바비인가, 켄인가?


매일매일 자신이 주인공이고, 모든 분야를 주도하는 바비 랜드의 바비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이는 단순히 주인공들과 그의 친구들이 기쁘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처럼 바비 랜드에도 여성이 있고, 남성이 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제라는 남성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중인 현실과 달리 가상의 세계인 바비 랜드에서는 여성인 바비들이 세상의 중심이고 주인이다. 여성인 바비들이 당연하다는 듯 모든 것을 누리고 이끄는 모습은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끼고, 어디 가서 감히 털어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이때의 내 감정을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다름 아닌 ‘대리 만족’이라고 하겠다.


이제 영화 ‘바비’가 개봉한 지 일주일쯤 지났으니 이런저런 리뷰들 덕분에 이 작품이 페미니즘 영화라는 사실은 알 사람은 다 알 듯하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주로 여성들이 차별을 받거나, 남성 중심 사회를 상대로 투쟁하고, 남성이 대다수인 분야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라면, 영화 ‘바비’는 굉장히 노골적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5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바비와 켄의 이름 다음으로 많이 소환된 것은 다름 아닌 ‘가부장제’이다. 그다음 많이 들은 말은 아마도 ‘여성’이리라. 쉼 없이 귀에 때려 박는 가부장제,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덕에 얼핏 예쁘고 반짝거리는 표지를 자랑하는 페미니즘 입문서의 영화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감독이 선택한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영화 ‘바비’도 ‘미러링’을 취하고 있다. 이는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하다. 비록 바비들은 여성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현실 세계의 남성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켄은 당연히 현실의 여성을 나타낸다. 영화가 진행되는 얼마간은 바비 쪽에 이입을 하며 여성으로서 내가 갖지 못한 권력과 영향력,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어간 순간부터, 기분이 점점 묘해졌다. 바비들의 환심을 사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켄들이 보여주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가부장제를 발견하고 흥분했다가 이내 다시 바비들의 사랑에 목을 매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바비들의 사랑을 갈구하고,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위치에 만족하며, 바비들로부터 약간의 인정과 배려만 받아도 크게 감동하는 켄들의 모습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기에.


끝끝내 켄들에게 동등한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 바비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고, 그러다 영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환상에서 깨어났다. 더는 우스운 켄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릴 수 없었다. 결국 감독은 지금페미니즘으로는 안 된다고,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고, 정말 이대로 만족하고 말 것이냐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뼈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연출로 우리를 현혹한 건가 싶다. 쓰디쓴 약을 삼키자면 독한 맛에 얼얼해진 혓바닥을 달래줄 초콜릿도 필요한 법이니까.  물론 바비 인형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콘셉트에 충실할 필요도 있었겠고.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켄은 그저 켄일 뿐이라는 포스터 문구와, 왠지 켄을 성가셔하는 듯한 트레일러 속 바비의 모습에도 불구, 영화가 여성의 이상적인 외모의 상징과도 같은 바비 인형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과, 그런 바비를 소화하기에 적격인 마고 로비가 주연이란 사실 때문인지, 영화 ‘바비’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작품임을 미처 모르고 관람한 관객이 많은 듯하다. 덕분에 온라인 후기들 중에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제법 보인다. 페미니즘이 싫다고 짜증을 내며 상영 도중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간 남성, 영화가 끝나고 그저 바비와 켄이 사랑에 빠지는 영화인 줄만 알았다며 남자 친구에게 해명을 하는 여성 등. 바비라는 장난감이 갖는 각 국가에서의 맥락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핑크색을 맞춰 입고 단체 관람을 하는 해외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에 대한 존중 면에서 그 차이가 커 보인다.


 영화 ‘바비’ 팀이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을 제일 먼저 방문한 것은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덕분에 현실의 여성과도 같은 켄들로 인해 한 번, 일부 관객들의 반응에 두 번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완벽하고 이상적인 삶을 뒤로하고 현실 세계로 뛰어든 바비의 결심을 되새기며, 좀 더 밝은 면을 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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