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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Sep 08. 2023

[브루스 올마이티] 뻔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불평불만 대신 할 수 있는 것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시기가 있었으리라. 왠지 자신만 뭘 해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하는 업무가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내가 잘하는 일이 있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친구들에게는 괜스레 서운해지고, 남자 친구와도 별 것 아닌 일로 다투었으며, 가족들 마저 내 마음을 몰라주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이 들 때면 자기애와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정수리에서부터 묵직하게 우울함이 내려앉은 듯 이불속에서 나오기도 힘겨웠다.


이런 시기에는 우습게도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곤 한다. 누구는 해외여행을 즐기고, 또 누구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구는 연인에게서 선물을 받는 식이다. 천만 다행히도 우울함이 최고점을 찍었던 그때나 지금이나 탓만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가혹할 정도로 자책했다. 이게 다 내가 못나서, 내가 누릴 자격이 없어서. 당시 외모 콤플렉스도 꽤 심했으니, 내 멘탈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덤덤히 서술할 수 있는 건, 그 시기도 결국 지나갔기 때문이다.


모든 건 다 이유법이


앵커를 꿈꾸는 브루스는 항상 시시한 취재거리나 맡는 리포터 신세에 신물이 나 있다. 에게 있어 항상 좋은 기사를 독식하는 동료 에반은 눈엣가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브루스는 항상 에반이 담당하던 생방송 취재를 처음으로 맡게 된다. 드디어 찾아온, 앵커로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에 흥분한 것도 잠시. 브루스는 결국 에반이 앵커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생방송에서 막말을 해 해고된다. 설상가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노숙자를 괴롭히는 불량배들에게 훈수를 다 흠씬 두들겨 맞는다.


거대 쿠키를 취재하는 브루스 / 생방송 중인 브루스


사나운 일진에 불만을 쏟아내는 브루스. 그와 달리 긍정적인 그레이스는 연인을 위로하며 말한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그러나 이런 소리는 이미 잔뜩 열받은 브루스의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고, 결국 둘의 대화는 말다툼으로 번진다. 홧김에 집을 나선 브루스는 신에게 한탄하며 제발 응답 좀 해달라고 호소하다 마침 삐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고, 음성 안내에 따라 ‘전지전능 주식회사’를 찾아간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무려 신을 만나게 된 브루스. 그동안 그의 불평을 들어온 신은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며 두 가지 규칙을 알려준다.


브루스의 연인 그레이스 / 신


첫 째, 본인이 신인 것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 둘째, 자유 의지에 반하는 행동은 삼갈 것. 이 간단한 규칙만을 알려준 채, 신은 그대로 휴가를 떠나 버린다. 이후 브루스는 얼마간 신의 능력을 마음껏 즐기지만, 이내 모든 게 엉망이 되기 시작한다.



긍정의 힘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주로 잘 맞지 않거나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연인에 대해 많이 쓰는 표현인데, 그만큼 한 사람이 변화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역시 근본적인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은 사람인 것 또한 아니다. 쉽게 우울해지고 인생이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내게 이제 더는 그런 성향이 없다. 천재지변과 같은 대단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심리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고, 그러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서히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되도록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긍정적으로. 누군가의 조언이나 인생 좌우명으로, 또는 자기 계발서의 멘트로서 흔하게 들어 진부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나쁠 게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심이든 기계적으로든 지겹게 들은 탓에 와닿지 않을지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다 단순히 이상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긍정의 힘이 지닌 실질적인 장점을 알게 됐다. 바로 시간과 에너지의 절약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집순이/돌이인 당신은 큰맘 먹고 외출을 결심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한 중고 서점에서 인기 소설책을 구매하는 것. 그런데 막상 서점에 도착하자 아침까지 재고가 세 권이던 것이 그새 품절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굳이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을. 충분히 짜증 날 만하다.


전지전능한 힘을 마음껏 즐기는 브루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짜증을 곱씹어야 할까, 아니면 바깥 구경이라도 해서 나쁘지 않았다고 여겨야 할까.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당연히 후자가 이상적이다. 그러나 안 그래도 되는 게 없다고 믿던 과거의 나는 이런 일까지 생기면 배로 억울해졌다. 나만 자꾸 재수가 없고, 살기 힘든 것 같았다. 결국 머릿속으로도, 친구에게도 투덜거리다 나도 모르는 새 짜증과 우울 그 자체에 몰입한다. 결국 그런 식으로 그날 하루 전체를 망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식으로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에 대해 되돌아봤다. 생각의 방향만 조금 틀고, 부정적으로 흐르는 감정을 끊었다면 기대와는 달라도 썩 괜찮은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었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억울해졌고, 이후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마치 운전자가 급하게 커브를 돌리듯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쉬웠을 리 없다. 당장 짜증 나 죽겠는데 와닿지도 않는 말로 나 자신을 속이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일단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스스로를 세뇌하고 보는 것이다. 뭘 어쩌겠어. 이만하길 다행이야. 나쁘지만은 않았어. 얼마 전엔 필요한 서류를 프린트하러 나갔다가 매장이 문을 닫아 허탕을 친 일이 있었다. 재택 근무자인 나에겐 그것이 그날의 유일한 외출 사유였다. 그리고 나는 이유도 없이 집을 나서는 걸 무척 싫어한다. 불 꺼진 매장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나는 이내 근처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보기에 따라 괜히 시간과 돈 모두를 낭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내가 먹은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였다. 외출을 하지 않았다면 이 맛있는 걸 먹지 못했을 것이라고.


신이 된 브루스에 의해 완벽히 배변 훈련이 된 반려견 샘


앞서 든 예시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다. 살다 보면 당연히 더 복잡하고 심각한 일로 회의와 낙담이 밀려올 수 있다. 그럴 땐 브루스처럼 신을 소환하며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평불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안 그래도 더디게만 느껴지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삶에 우울과 불안, 그리고 피해의식만 더해 줄 뿐이다. 그러니 다소 뻔하고 막연하게 느껴지더라도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의 시간은 최소한으로 하고, 어쩔 수 없는 일 대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니 브루스의 연인 그레이스의 말처럼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그리고 속는 셈 치고 긍정의 힘을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6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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