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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Dec 15. 2023

[두얼굴의사나이 : 헐크파일럿] 내 안의 또 다른 나

누구나 조금씩은






신뢰도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mbti가 순 엉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피가 곧 성격이라는 혈액형 별 성격에 비해 적어도 mbti 테스트는 자신이 답을 고른다는 의미에서 본인의 가치나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mbti 중 가장 첫 번째 알파벳을 밝히자면 I이다. 심지어 I가 무려 90%에 육박하는 극 내향형이다. 매일 재택근무에 주로 노트북이나 책을 붙들고 있는 나의 성향이 테스트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놀랍지 않게도 한껏 꾸민 채 낯선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시끄러운 파티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 넷플릭스나 보는 게 훨씬 행복하다. 친구를 만나자고 한다면 되도록 일대일을 선호하며, 나 포함 최대 세 명까지만 기가 적당히 빨리며 견딜 수 있다. 물론 집에 돌아갈 때 같은 방향인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내향형인 나이지만, 의외로 낯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거나 즐거운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속마음은 어쩔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데 무리가 전혀 없다. 만약 상대방이 유독 말수가 없고 어색해 어쩔 줄 몰라한다면 기꺼이 내가 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숨 막히는 정적이 불편하기 때문은 아니다. 숨 막히는 정적, 솔직히 싫지만은 않다. 다만 다른 이들이 숨 막히기 전에 내가 살짝 나서 보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내가 외향형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물론 내향적인 것과 내성적인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많이들 혼동해서 쓴다는 점에서 이해 가는 반응이다. 가장 많이 들어본 유형은 ESTP로, 내 실제 mbti와 알파벳이 딱 하나 겹친다. 이런 반응들이 흥미로우면서도 내가 너무 다른 사람 시늉을 했나 싶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나의 모습이라고, 누구나 숨겨진 또 다른 면이 있다고 말이다.


The Incredible Hulk


불행한 교통사고로 부인 로라를 잃은 데이비드 배너 박사. 그는 때때로 당시의 사고에 관한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그런 데이비드는 오랜 동료 일레나 마크스 박사와 인간의 힘을 100%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에 있으며, 이를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적이 있는 80여 명의 사례자들을 모아 인터뷰와 각종 검사를 진행한다. 그중 데이비드와 비슷한 차 사고를 겪었던 마이어 부인은 당시 엄청난 힘을 끌어내 아들을 구출해 낸 경험이 있다. 때문에 피험자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애쓰던 데이비드와 일레나는 각종 실험 끝에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DNA 변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아내를 잃은 후 악몽에 시달리는 데이비드  / 함께 연구 중인 데이비드와 일레나


알고 보니 데이비드 역시 사례자들과 마찬가지로 DNA 변이가 있었으나 사고가 당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에 의문을 느낀 그는 마침내 한 가지 차이점을 밝혀 낸다. 피험자들이 사고를 당했을 땐 흑점으로 인해 감마 활동이 폭증했던 것. 이를 파악한 데이비드는 곧장 방사선실로 향하고, 감마선 수치 30만으로 실험을 진행하지만, 기능이 업데이트된 기계는 감마선 수치를 무려 200만까지 출력한다. 별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퇴근길에 오른 데이비드. 하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차의 시동은 걸리지 않으며, 이동 중 타이어가 펑크 나 교체를 하다 상처까지 난다. 점점 더 화가 치밀기 시작한 그는 우렁찬 번개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엄청난 괴력을 지닌 거대한 녹색 괴물로 변신한다.



열 길 물속알아도 한 길 모르니


영화는 인상적인 문구와 함께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강렬하고 맹렬한 분노가 있다.’ 배너 박사가 헐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분노이다. 비록 감마선에 노출이 먼저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변신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가슴 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껴야만 한다. 1977년도 작품인 ‘두 얼굴의 사나이 : 헐크 파일럿’ (이하 ‘두 얼굴의 사나이’)을 제외하고는 헐크라는 캐릭터를 접한 것은 어벤저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헐크뿐이지만, 다른 영화 속 헐크의 설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화부터 내라. 그러면 변할지니.


내가 본 작품 속 배너 박사들만을 한정해 말하자면 나 못지않게 내향적인 편으로 보인다. 특히나 어벤저스 시리즈의 브루스 배너는 활달한 인싸 성격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심지어 어딘가 유들유들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두 얼굴의 사나이’와 어벤저스의 배너 모두 신체 ‘건강’ 해 보이기는 해도 ‘건장’ 해 보이지는 않다. 그런 그들이 어떤 트리거에 의해 엄청난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녹색 괴생명체로 변신하는 것이다. 인간일 때의 그들은 적당한 말로 구슬릴 수 있을 듯한 이미지이나 일단 변신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헐크로 변해가는 데이비드


대부분 오락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헐크이지만, 이 캐릭터 자체는 1977년도 작품의 한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한 사람 속에 감추어진 이면, 혹은 폭발적인 감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특히 재밌던 장면은 배너 박사가 처음으로 헐크로 변신한 뒤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한 부분이다. 마치 이성을 잃고, 혹은 술에 취해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가 다음 날 기억을 못 하는 것과 흡사하다.


헐크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경우 평소에는 기력이 없고 심지어는 음울해 보이다가도 세상 활발하고 쿨한 사람처럼 굴 때가 있다. 즐겁지 않은 상황에 던져졌거나 편치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땐 동태눈을 하고 있다가도 귀여운 동물들만 보면 그 누구보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취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좋아하는 TV 시리즈는 한니발이요, 즐겨 보는 장르는 스릴러나 공포이지만 얼마 전부터 넷플릭스에 리부트 되어 올라온 텔레토비 시리즈를 남몰래 시청 중이며, 요즘엔 푸바오에 푹 빠져있다.


변신 완료


이렇게 뒤죽박죽 복잡하고 반전 가득한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아마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첫인상과 실제 성격이 다르고, 알면 알수록 또 다른 면이 보인다. 한 10년쯤 알고 지내다가 또다시 미처 몰랐던 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런 의미에서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와 성격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다양한 면이 있는 것처럼 남들 또한 그럴 것임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상대방을 더 열린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나의 오판으로 인해 누군가 헐크처럼 돌변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007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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