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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30. 2021

[구독좋아요알림설정] 도대체 남들의 관심이 뭐길래

타인에 중독되게 만드는 세상, 온라인



‘구독좋아요알림설정’. 대부분의 유튜버가 영상 말미에 언급하거나 삽입하는 멘트다. 짧지도 않은 이 멘트를 제목으로 내 건 영화가 있다. 무척이나 직관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는 이 영화의 원제는 ‘Spree’. 극 중 ‘Spree(이하 스프리)’는 우버(Uber)와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라고 한다.


영화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의 주인공 커트는 바로 이 ‘스프리’의 운전자이자, ‘커트월드96’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꿈나무이다. 한국 제목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유튜브의 기능들을 따와 제목으로 삼은 듯하다. 바로 이 제목 때문에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비록 커트가 유튜버는 아니지만 그가 어디에 미쳐 있는지 쉽게 알려주는 데는 이만한 제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직설적인 제목과, 어쩐지 세련되지는 못한 포스터로 인해 이 영화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땐 이건 무슨 B급도 아닌 폐급 싸구려 슬래셔 무비인가 싶었다. 마침 왓챠에 올라와 이 영화의 감상을 마친 지금, 가능만 하다면 감독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똑똑한 전개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꽤나 굵직한 메시지를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흥행 참패가 유감스럽기만 하다.



• ‘좋아요’와 ‘팔로우’에 자존심을 팔다


딱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96년생 백인 남성 커트는 10년째 ‘커트월드96’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의 인생 목표는 팔로워를 늘리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경험들을 콘텐츠 삼아 영상을 올려 보지만 영상 조회수나 라이브 방송 접속자 수는 두 자릿수를 넘기기도 버거워 보인다. 봐주는 사람 없이 10년이나 계정을 운영했을 정도면 커트의 열정만은 높이 살만 하다. SNS 인플루언서라는 꿈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 그는 ‘더 레슨’이라는 제목의 라이브 방송을 기획한다. 그리고 그 방송을 통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생중계하기 시작한다.


'스프리'에 승객들을 태우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는 커트


커트가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 10명도 안 되는 시청자들은 그 장면이 그저 연출일 거라고 확신한다. 너무 정직하게(?) 살인만을 저지른 탓일까. 무려 살인까지 저질렀는데도 여전히 바닥을 기는 조회수에 분노한 커트. 그런 커트를 더욱 자극한 이가 있었으니, 우연히 그의 차에 탑승한 제시이다. 잘 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엄청난 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제시는 그 존재만으로 커트의 아픈 곳을 찌른다. 제시의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며 분통을 터뜨리던 커트는 결국 제시의 공연에서 그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운다.


제시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는 커트


명을 재촉하려는지 제시는 자신의 공연에서 커트가 와 있는 줄도 모르고 그의 스프리에 탄 경험을 이야기한다. 자꾸만 팔로우를 부탁하던 커트와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던 제시는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던진다.


‘SNS는 이제 끝이에요.’


SNS 팔로워 수와 남들의 관심에 집착하는 삶이란 결국 거짓일 뿐이고,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사는, 말 그대로 타인에 중독된 삶에 지나지 않기에 이러한 삶을 끊어내겠다는 선언이다. 오직 조회수와 팔로워 같은 숫자 놀음에 목을 맸던 커트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화 ‘구독좋아요알림설정’ 이렇게 반듯한 메시지만 던지고 끝나지 않는다. 커트가 이쯤에서 살인을 멈추고 죄를 뉘우친다거나 자수를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예상치도 못한 마지막 한 방으로 전형적인 '인셀(incel : involuntary celibate - 비자발적 순결 주의자)'의 자격지심 가득한 유혈 낭자 살인극일 거라고 예상했던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울려 퍼지는 경쾌한 음악을 듣고 있을 때쯤 서늘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안 하고 살 수 없으니까


한때 페이스북을 나름 열심히 했었다. 나름이라고 이야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앱을 다운로드한 적도 없을뿐더러, 남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핸드폰을 붙들고 있던 적도, 순전히 SNS에 사진을 올릴 목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누르는 ‘좋아요’가 얼마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뼛속까지 내향적인 나이기에 당연히 SNS 친구도 현실 친구 수에 비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내 실제 친구들은 모두 페이스북 계정이 있었고, 그들과는 모두 팔로우를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만족할만한 수의 ‘좋아요’나 댓글을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깊은 대화는커녕 그다지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동기들이나 지인들에게 ‘친구 신청’까지 하게 됐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나와 상대방 둘 중 누구도 ‘친구 신청’을 거절한 적은 없었다.


페이스북 내에서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과 내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사이가 되지는 않았다. 하물며 카카오톡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으니 더 말해 뭐할까. 물론 그중에는 서로 연락처조차 없어 카카오톡에 ‘추천 친구’로 뜰 일마저 없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내키지 않는 SNS 인연까지 맺었지만, 소위 말하는 ‘인싸’들이 받아 내는 ‘좋아요’와 댓글들을 따라가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활동적인 편이 아닌 나로서는 주기적으로 그럴싸한 게시물을 올리는 것 또한 교수님이 내 준 과제 못지않게 부담스러웠다.


애초에 남들이 다 하니까,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만든 계정일 뿐이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이 SNS 상에서 댓글로 나눈 대화들을 나만 모르는 상황은 겪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점점 더 남의 반응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나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내 친하지도 않은 다수와 온라인에서만 소셜라이징 할 시간에, 소수의 친구들과 직접 만나 유대를 쌓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국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게시물에 따라오는 가깝지도 않은 이들의 ‘좋아요’와 댓글에 뭐 그리 신경 썼을까 싶지만, 아마 당시에는 제법 심각했으리라. 사진을 하나 올린 순간부터 온 신경이 곤두 서고, 누군가 반응을 보이면 그걸 자양분 삼아 그다음엔 좀 더 큰 관심을 기대하며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담긴 또 다른 사진들을 올리는 것이다. 사실 그에 뒤따르는 반응과 관심은 친척 어른들이 명절이면 으레 묻는 어디 취업했니, 사귀는 사람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질문들과 질적인 면에서 나을 게 없는 줄 알면서도.


영화 ‘구독좋아요알림설정’에서 댓글로만 등장했던 인스타 라이브의 시청자들이 건네는 혹은 부추기는 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 커트가 떠올린 살인 콘텐츠 자체는 극단적 일지 몰라도, 그의 방송에 대한 팔로워 및 시청자들의 반응만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당장 유튜브에만 가도 타인을 공격하고 비방하려는 목적의 영상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러한 유튜버들의 구독자들은 ‘좋아요’와 ‘후원’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부추긴다. 이들 중 그 누구도 해당 유튜버와 그가 음해하는 피해자들에게 추후 생길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제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라이브 시청자들을 상대로 투표에 부친 커트 / 그리고 그의 티셔츠에 적힌 한글 문구 '전설의 남자'

 

현대 사회에서 SNS 계정 하나 없이 생활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SNS 계정으로 여러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광고 이벤트에 참여하자면 SNS 공유는 필수다. 내가 브런치에 지원할 때도 4년 전에 활동을 멈춘 블로그 주소를 공유했다. 엄청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SNS에는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페이스북을 삭제한 나는 지금 트위터를 통해 국내외의 사회 이슈들을 접하고, 내가 구독한 고양이 유튜버들이 올린 사진을 보기 위해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다만 브런치를 제외하곤 어느 곳에서도 나의 게시물을 직접 올리지는 않는다. 실제 친구들과 SNS 상 친구를 맺지도 않았다. 이것이 온라인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나름의 방법이다. 고작 재미로 하는 SNS에 대해 뭐 그리 깊게 생각하나 싶을 수 있겠지만 어느 지점부터 재미가 아닌 집착을 부르며, 나 자신답기보다 남들이 기대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애쓰도록 부추긴다는 점이 SNS의 함정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타인에게 쉽게 중독되도록 만드는 온라인 세상에서 다들 자신을 지켜가며 즐거운 SNS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사진 출처

스틸컷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38091

포스터 : imdb

https://www.imdb.com/title/tt11394332/media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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