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악마의 귀향

단편 소설 - 악마의 귀향

by 태수련

그가 두려움에 질린 눈을 나에게 향했다.


그마저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재빨리 나한테서 눈길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와 내가 눈을 마주친 시간은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찰나였다. 그런 후에 그- 내 큰아버지는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리고 이후에 내가 큰 집을 나설 때까지도 눈동자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일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지금 부엌에 들어가 있는 큰어머니와 두 사람의 딸- 나의 종질녀가 되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두 사람은 지금 거실에 뭔가 아주 무섭고도 부정한 것이 있는 것처럼 거실 쪽을 한껏 외면하고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내가 그렇게 꺼림칙하다 이건가.


이런 분위기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큰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 장례 때문에 내려온 거지?”

“...네. 지난주에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아빠가 말레이시아에서 돌아가셨다고.”

“...맞아. 나한테도 미국에서 네 엄마가 전화를 했었지. 통화하면서 나하고 상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장례는 고향에서 치르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 20년을 타향에서 숨어 산 것도 딱한데 장례 정도는 고국에서 치르는 게 좋겠다고 말이야. 음, 생전에 네 아버지도 그걸 원했다고 하더라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신을 인수해 들어오는 데서 절차가 좀 있기는 한데, 요새는 행정적으로 그런 것도 잘 되어 있으니까. 별일 없으면 다음 주쯤에 장례를 치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얘기를 하는 중에도 큰아버지는 계속 내 눈길을 피했다. 그때 나는 부엌에서 들리던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어느 순간 그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엌에 있던 두 사람은 식사를 다 차려놓고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만 내가 있는 거실 쪽으로 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정적을 깨고, 나는 입을 열었다.

“저기 큰아버지, 최근에 학자들이 연구한 게 있다던데 들어보셨어요? 그러니까 남성한테는 여성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본능이 기본적으로 있는데, 아주 어린 시절에 그런 본능이 발현되면...”


“얘 광문아.”

등 뒤에서 큰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우린 점심을 먹어야 하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겠니?”


숙박을 해야 하는데, 가는 시설마다 모두 숙박을 거절당했다. 그래서 동네 어귀에 주차해 놓은 모닝 안에서 다른 숙박 시설을 검색해 보았는데, 가장 가까운 곳도 무려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와장창!!!


엄청난 소리가 나고, 모닝의 운전석 쪽 창문이 깨졌다.

스마트폰에 집중해 있느라, 사람이 내 차로 다가오는 걸 몰랐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박살 난 유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차 밖으로 나왔다.

차문 앞에 차창을 부순 게 틀림없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돌덩어리에는 가느다란 종이조각이 묶여 있었다. 나는 묶인 종이조각을 풀어보았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악마!!!'


차창의 유리를 부순 놈을 차로 뒤쫓아갔지만 놓쳤다. 그러던 와중에 경찰의 눈에 뜨였고, 나는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경관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서로 가게 되었다.

경찰서로 들어갈 때 신분증을 요구하기에 내밀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경찰관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면서 이 경관 역시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생각해보니 경찰관의 저런 반응은 당연한 거였다.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일반인보다 들은 정보가 더 많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사건'은 당시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찰서 내 교통과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키가 크고 풍채가 아주 좋은 중년 남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빛이 부리부리한 사람이라 형사가 아닌가 했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 그는 내 맞은편 책상으로 다가가 거기 놓여있던 의자에 앉더니,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자신을 박동철 형사라고 소개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나 기억나? 20년 전에 만난 적 있는데 말이야.”

...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그가 말을 덧붙였다.

“20년 전 그 사건 때, 널 조사한 형사가 나야.”

...!!! 아아, 그 때 그 형사인가. 나는 기억 속에 흐릿해져 있던 박형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박형사의 외모가 아니라, 그때 그가 내게 보여준 경악스러운 눈빛이었다.


박형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나에게 물었다.

“뭐하러 내려온거야?”

“...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다음 주 중에 여기서 장례를 치를 거라고 엄마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아아, 그 사건 이후로 너희 부모님이 이혼하고 각자 외국으로 떠났다는 얘기는 들었지. 아빠가 돌아가셨다니 안됐군. 아직 창창한 나이이신데.”

그러면서 박형사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가 말은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날 비난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조여오는 듯한 이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고 힘겹게 박형사에게 말을 꺼냈다.


“...요근래 외국의 유명한 학자가 아동심리에 대해 연구한 거 들어보셨어요?”

박형사는 뜬금없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설명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심리를 갖고 있는데, 그런 심리가 아동기 시절에는 다소 폭력적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폭력적인 행동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심리에 기인한다. 겉보기에 난폭해 보이지만, 남자아이들은 장난이라고 인지한다.


내 설명을 들은 박형사가 대답했다.

“그래서, 네가 그때 한 행동이 어디까지나 장난이라 이거냐?”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고명한 학자가 연구한 거라고요. 약간 난폭해 보였을 수 있지만 진심은 그냥 관심이 가는 여자아이와 재밌게 놀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러다가 일이 좀 잘못되기는 했죠.

하지만 그때 일은 그냥 장난치다가 생긴... 단순 사고였어요.”

이 말에 박형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야 그건... 살인이야.

9살이었던 네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학교 옥상으로 끌고 가서,

거기서 떠밀어 죽인... 살인사건.”


20년 전, 이 도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고작 9살 된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가해자에게 학교 옥상으로 끌려가 거기서 떠밀려 건물 아래로 무참히 떨어져 사망했다.

가해자는 같은 반의 급우로, 똑같이 9살이었다. 그리고 그 가해자는...


바로 나다.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는, 이 조그만 소도시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게다가 일이 터진 시각은 점심시간으로, 대낮이었고 옥상에서 노는 아이들도 아주 많았다. 그 아이들 대다수가 이 사건을 목격했다. 여러 아이들의 목격담, 몇몇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 거기에 복도의 CCTV에 찍힌 영상들이 아주 명백하게 사건을 밝혔다.


“사건을 재구성하는 게 그렇게 쉬웠던 케이스는 처음이었어.”

박형사는 나에게 말했다.

“넌 그 여자아이를 짐짝처럼 강제로 옥상으로 끌고 갔어.

그리고 하지 말라고 발버둥 치면서 네 팔에 매달리는 그 여자아이를 옥상 아래로 힘껏... 떠밀어버렸지.

그것도 웃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박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난 믿을 수가 없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인지 너무도 명백한데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그 당시 너는 정말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너는 고작 9살이었는데...”


박형사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가, 나직하게 나에게 물었다.

“이제 말을 해봐라. 도대체 왜... 그 애를 죽였어?”

“그때도 말씀드렸잖아요. 전 그냥 장난이었다고요.”

나 역시 애써 목소리를 쥐어짜서 대답했다.


“그 애가... 우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 직업이 형사라서, 난 연쇄살인범이나 조직폭력배도 여럿 보았어.”

박형사가 몹시 두려운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 하지만 그중 누구도 너만큼 나를 두렵게 한 적이 없었어.

천사의 얼굴을 하고 미소 짓는 너를 보면서 난 정신의 밑바닥이 박살 나는 걸 느꼈다... ”


나는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대한민국 범죄사에 기록된 최연소 살인자다.


박형사가 계속 얘기했다.

“네 사건 이후로 난 신앙을 갖게 됐지. 신앙을 가지면서 알게 된 게 뭔지 알아? 인과응보라는 건 진짜 있다는 거야.”

나는 그를 보았다. 박형사는 말을 이었다.

“정말로 네 의도가 장난이었다고 해도, 너는 네가 한 그대로 고스란히 돌려받게 된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언제, 어떤 식으로 응보를 받을지 알 수 없다는 거지.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려받게 되어있어.”

박형사는 잠시 침묵하고, 나를 응시했다가 마지막 말을 던졌다.

“아버지 장례가 끝날 때까지, 각별히 조심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경찰서를 나와 모닝을 몰아 시 외곽에 주차시켰다.


밤이 되었다.


나는 문득 내 차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서 있는 걸 알아차렸다.

몇 명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핸들을 꽉 잡았다.

그때 인과응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칠흑 같은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