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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준비하는 방법

김금희 작가 단편소설 '문상' 감상문

by 이태경

어릴 적 경험했던 친가 식구의 장례식을 희끄무레 떠올린다. 새벽녘의 회백색 공기와, 굳게 다물어진 사람들의 입술과. 화장과 함께 그제야 터져 나오는 곡소리에 스치는 고인과의 추억이 어쩐지 서글퍼져 어린날의 눈시울을 붉혀야 했던, 그런.

문상을 많이 다녀보진 않았지만 김금희 작가의 문상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희한하게도 최근의 것이 아닌 저 너머의 어린 기억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써 보려고 했던 김금희 작가 작품의 단상을 이 단편으로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 다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작 중 장례식의 상주로 등장하는 희극배우의 행동은 보편적인 상주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연기하는 이 장례식이 불편하다. 그래서 희극 배우는 잠깐의 조문 후 떠나려는 직장동료 '송'을 굳이 따라나선다. 그러나 이는 "원래 문상은 경황이 없는 상주를 짧게 일별하고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송의 생각에 위배되고, 그들의 불편한 산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희극배우라는 인물은 김금희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특징이다. 일반적인 정도(正道)를 따라가지 않는 김금희의 단편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처럼, 그들은 존재만으로 타인의 세계를 간섭하고, 또 그들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자처한다. 그렇게 희극 배우는 송과의 산책 중 송이 가지고 있던 조모의 죽음에 관한 트라우마를 대화를 통해 끌어낸다.


송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옛 연인 '양' 과의 이별이나 조모의 죽음같이, 와해된 관계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원인은 그 맥락에서 발생한 무수한 행동의 파편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 이다. 실은 그렇게 단순한 이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양에게 다시금 전화를 걸며 마무리되는 작품의 결말부는 다소 친절하며, 따뜻하다.


살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일은 내게 도저히 익숙해지거나 무뎌지지 않을 것만 같고, 앞으로 몇 번의 문상을 더 다녀와야만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마냥 과거의 내가 나빴음을 상기시키는 촉매가 되지는 않기를. 당신도, 나도, 고인도, 나쁜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냥 우린, 우리의 관계에 조금 서툴렀을 뿐이었다고.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 서툴던 일련의 관계를 통해 다음 관계를 더 촘촘하게 준비하려고 힘쓰는 것이니까.


김금희 작가가 이 소설을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이 읽어 주"길 바라니, 나 또한 언젠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볼 뿐이다.

- 소설 '문상', 김금희 作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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