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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형 Oct 10. 2017

리더십 장애관리

대한민국 개발자로 산다는 것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 벤자민 프랭클


개발자에게 리더십이 필요할까?

코딩하고, 메일 쓰고, 문서를 작성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보내는 개발자에게는 리더십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았으며, 내가 씨름하고 고민해야 할 대상은 언제까지나 컴퓨터가 최우선일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과장이 되면서부터 생각의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까지나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는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개발자도 언젠가는 관리자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지극히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관리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다. 그동안 내가 맡은 개발 건만 챙기며 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니 이런 내가 관리자를 맡는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선배님, 저 그때까지는 개발 못할 것 같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후배 앞에서 나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나 때만 해도 하라고 하면 이유 불문하고 받들어하는 것을 당연시했는데, 요즘 들어오는 후배들은 참으로 당차다는 생각과 함께 이를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는 결국 예정에도 없는 야근을 하며 개발 일정을 맞춰야 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툭하면 지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호회 활동으로 매주 수요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근을 해야 한다는 사람, 번번이 개발일정을 맞추지 못해 애를 먹이고, 한창 바쁜 시기에 길게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까지...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혹독한 과장의 유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장애관리(fault management)는 발생 가능한 모든 장애요인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해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SM이라는 IT 용어가 시스템 유지보수(System Maintenance)를 뜻하는 이유가 '사람을 관리한다'는 의미도 내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시스템을 잘 운영하려면 시스템을 관리하는 인력들의 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말이다. 내가 이 글의 제목으로 굳이 리더십과 장애관리를 연관시켜 놓은 것도 따지고 보면 리더에 의한 사람 관리가 잘못되면 시스템의 장애상황과도 연결되는 것이 전혀 억지스럽지는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장애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되듯 사람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장애를 관리하기 위한 지침을 만들 듯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잣대가 있어야 한다. 또한 장애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세심하게 사람을 대한다면 시스템의 장애관리처럼 인력관리도 원활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선배님, 저 요즘 걔 때문에 정말 힘듭니다. 제가 불러도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핑곗거리는 뭐가 그리도 많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치지 않는 게 없어요. 더 이상 같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평소 부서에서 친한 선배를 불러다 놓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한참을 얘기했지만 통쾌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선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단다. 나와 같은 시기에 많이들 겪는 성장통이란다. 답답한 마음에 리더십 책을 읽어 봐도 뻔한 얘기만 써놓은 것 같고, 내 상황과는 맞지 않은 것 같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한 해결의 실마리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찾아왔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건지, 끝까지 시험하고 싶었던 건지, 복잡하고 기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개발 건을 주었다. 따지고 보면 그래 어디 한번 잘하나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한번 고생 좀 해보라는 내 방식의 계산된 복수였다. 역시나 처음엔 끙끙댔다. 보아하니 잘 물어보지도 않는 성격이다. 혼자서 해보려는 듯싶어 나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야근까지 자처하며 할 때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기어이 해내는 모습에서 약간의 호감을 갖게 됐다. 보아하니 이 녀석 끝끝내 파고들어 해결하는 근성이 있다. 개발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몰입해서 해내려는 의지하며, 티끌 같은 케이스까지 잡아낼 생각인지 모든 케이스를 정리하며 진행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한마디로 내가 찾던 꼼꼼하고 노력하는 인간형이었던 것이다.


후배의 강점을 발견한 뒤로는 함께 일하는 게 좋아졌다. 누가 와도 인사도 안 하고 태도가 건방지다고 문제 삼아도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게 됐으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후배의 업무 태도를 칭찬하고 있었다. 단점만 보이던 눈에 비로소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강점은 내 불만의 시야에 갇혀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더욱 고무적인 변화는 후배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아마 본인이 인정을 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듯싶다.


강한 상대를 제압했다고 생각하자 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 얻은 교훈은 개발자는 개발자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발견된 강점은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인정이라는 것의 다른 말은 공감이다.

결국 인정이란 서로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배 역시 본인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알리길 원했을 것이다. 마치 응답을 기다렸다는 듯 이 부분이 해소되자 소통은 좀 더 원활해졌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여러분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모듈 회의 때 모듈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내 역할에 대해 정의를 내려주고 싶었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구성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 말을 꺼낸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나는 리더가 되면서 이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배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내가 지향하는 방향을 전달하고 함께 가길 원했다. 이 과정에서 신입사원도 자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일단은 끝까지 들어주고, 의사결정에 채택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돼 갔다. 편안하고 자발적인 소통이야말로 서로 공감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이 흔히 리더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고 가능성을 발굴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잠재력’을 ‘강점’으로 해석했다.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에 좀 더 익숙해져 있는 듯싶다. 내가 속한 집단만 해도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단점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본인이 올라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 밑바탕에 경쟁사회의 원리가 깔린 행동이며, 실제로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도 반한다.


그런 면에서 리더는 개개인의 강점을 극대화해서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리소스는 한정되고, 부정적인 바이러스는 넘쳐나도 조직원들의 자발성과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리더의 의지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분위기를 이끈다.


리더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존재다.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리더란 “뒤따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한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명쾌하고 공감 가는 말이다. 나 역시 리더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리더가 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아무리 북 치고 장구 쳐도 뒤에서 '얼씨구'하며 장단을 맞춰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람이라면 달라질 것이고 믿고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따르는 자들이 자연스럽게 리더로 인정하고 추대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다. 스스로 인정하는 리더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리더의 모습이 진정성 있고 이상적인 리더다.


나에게 리더십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양한 상황이 만들어낸 조건 속에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주면서 터득한 훈련된 능력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 성격은 개발자가 보편적으로 가지는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내가 경험한 바를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었으면 한다.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면 이를 복구하고 사후 처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듯, 사람과의 관계 역시 한번 어긋나면 되돌리기까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보다 부족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따로 배운 적이 없어 몸으로 부딪혀가며 익혀야 했지만 아직까지 도망가지 않고 내 곁을 지키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함께 성장한다는 게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론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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