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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형 Oct 17. 2017

인생을 재부팅하다

대한민국 개발자로 산다는 것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혼란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린다. 심리적으로 혼란이 가중될 때, 혼란 속에 면면히 흐르는 새로운 질서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 박종수 《융심리학과 성서적 상담》 中


개발자들은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편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계층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열성적으로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심히 걱정하는 개발자들이 많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깡그리 바꿔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성토한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아무리 애써가며 외쳐봐야 잘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기운만 빠지게 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변할 때가 있다. 그건 우리가 바뀔 때다. 어떻게 보면 우린 정작 변해야 할 건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항상 중요한 건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데도 말이다. 내 자신의 전환을 통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재부팅(reboot)한다'는 것은 컴퓨터 같은 기계가 말썽을 부리는 상황이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한 경우에 컴퓨터를 껐다 켜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컴퓨터가 엄청나게 느려지거나 랙(lag)이 발생하는 경우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한다. 또한 재부팅은 시스템을 초기화하고 쓸데없이 할당된 메모리를 다시 회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컴퓨터는 복잡한 연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함은 물론 구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가끔은 개발자들도 깔끔하게 재부팅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프로그램을 작성하다가 막힐 때,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들 때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메모리를 확보하고 깔끔한 기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역시 인생에 블루스크린이 뜬 적이 여러 번 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정신 없이 몇 달간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한 시간과 문제 상황들이 만들어낸 부조화된 일상에서 울컥 토악질이 밀려왔다. 사람과 일 사이에서 점점 고갈돼 가는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의 암담함 속에서 지쳐갈 때쯤, 나에게 주어진 찰나의 여유는 잠깐 동안의 산책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거닌 산책길에서는 언제 피었는지 모를 꽃들을 볼 수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도 전혀 짜증스럽지 않았다. 난 그 시간 동안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자연의 혜택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직장인들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재충전할 기회를 얻는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나 역시 보통의 주말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충전 방식은 너무도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내겐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매일 할 수 있는 산책은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보지 못한 생경한 풍경들을 볼 수 있음은 물론, 마음이 가라앉고 여유가 생기는 경험을 하게 한다. 



온종일 잘 풀리지 않던 코드, 난해한 로직,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복잡한 문제도 잠시 쉬면서 걷다 보면 기분전환도 되고 번쩍이는 영감이 떠오를 때가 많다. 이처럼 매일 같이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해진 루트로 출근하고,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얽혀 하루를 보내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매일같이 내게 신선한 기분을 전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무슨 미련을 버리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보며 시간만 지나길 바라고 있는 것인지.


당신이 영혼의 눈으로 볼때, 당신이 주목하는 모든 것은 진화와 영감 어린 창조를 촉진한다. 주의력을 깊게 사용할수록 당신은 더많은 진실과 영성을 찾게 된다. 주의력과 주체가 당신의 본성, 즉영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당신은 더큰목적의식과 힘을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당신은 이런 질문까지 던질 수있다. "내 인식이 곧내삶을 창조하는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영혼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자신의 모습만 보게 된다. 왜냐하면 영혼은 분리가 불가능한 무엇이므로 '영혼이 아닌 것'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영혼으로서 주의력을 사용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과 그 대상 사이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페니 피어스 《인식의 도약》


페니 피어스의 말대로 의식의 확장, 더 나아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일대 전환이야말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진실된 과제이자 축복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고차원의 영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고 주의력을 펼쳐나갈 때 진정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는 실제로 적극적으로 변환 과정에 동참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변환 과정을 통해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씩 전환해 나갈 때 변화해 가는 자신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관점을 전환해야 함을 깨달았다. 세상을 바꾸려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훨씬 쉽게 다가왔고, 세상이 바뀌길 바라만 보면 불만만 쌓여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현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 인식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사물과 현상을 볼 때 주의력 있게 의미를 판단하는 버릇이 생겨났고, 무엇이든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도약을 맛봤다.


생각을 전환하다

“Think Different” 스티브잡스가 애플의 광고에서 사용한 마케팅 용어다. 그는 이 광고에서 세상을 다르게 본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꿨다고 소개한다. 세상까지야 바꾸지 못한대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야 바꿀 수 없더라도,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 선택은 언제나 내가 했다. 내 일상을 학습중심에서 사색중심으로 바꾸자 그제야 나에게도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놓여있다. 결국 생각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어제와 똑같은 결과만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의 삶도 예외는 아니다.


패러다임을 전환하다

최근 함수형(Functional)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 논지인즉, 그동안 사물의 속성에 기반을 둔 객체지향적인 관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추상화 개념인 함수형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말 그대로 사고의 전환이다. 고착화된 사고의 틀을 깨면서 코드는 더욱 간결해지고, 개발자들은 좀 더 자유롭게 생각을 코드로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 향후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 시 겪게 되는 패러다임 전환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이젠 정말 주문만 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프로그램을 작성해 주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시대에 발맞춰 개발자들도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보다 좀 더 큰 흐름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우리 생각의 패러다임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감정을 전환하다

분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우울은 춥고 얼어붙게 해서 생명은 어느덧 빛을 잃어간다. 불안과 걱정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혼잣말을 많이 하게 하며, 슬픔은 겉으로 드러내놓고 숨기지 않은 슬픈 감정을 통해서 해결된다. 반면 용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며, 행복은 스며들지만 기쁨은 달려든다. 우리는 환희를 보통 ‘벅차다’는 말로 표현한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에겐 두려운 감정이 변화를 가로막았다.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변화할 때는 두려운 감정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시각을 전환하다

내 안의 반짝이는 보석도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바라보면 통찰력을 얻게 되고, 항상 앞면만 보던 시선을 뒤쪽으로 옮길 때 사물의 슬픈 단면을 보게 되며, 시각을 자연으로 옮길 때 내가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하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길에는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가는 걸 느긋하게 지켜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건 ‘뭔가 새롭다’였다. 난 궁극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안으로 돌려 나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싶다. 


환경을 전환하다

편하고 느슨한 환경에서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잘 발현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야 질긴 근성이 드러나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더해진다. 이때 단련된 인내와 끈기는 절실한 심정이 되어 나를 채찍질한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변화를 생각할 때 나도 모르게 어려운 상황으로 나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게 내가 변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며 달라지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게 지루하고 익숙해져 버린 기존의 삶과 결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관점을 전환한다

우리는 일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삶에서 일이 없으면 존재가 초라해지고 반대로 일이 과도하게 많아 삶이 치이기 시작하면 존재는 방황한다. 어떻게 하면 이 둘을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하다. 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이라는 관점을 바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시작할 때 일은 욕심을 갖고 대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심을 두고 관리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욕심을 가지면 잘하고 싶어지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나는 그제야 이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 간에도 그렇지 않던가.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대할 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좋아지게 되고, 그 사람에게 푹 빠져 깊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만 해야 한다면 관계는 오랜 기간 유지되지 못한다.

직무를 전환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하나씩 전환한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기존에 가진 하나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힘만 들고 성과가 없던 일 하나를,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했던 일 하나를 내 인생의 태스크에서 덜어내 보자. 나는 생각한다.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내 주변이 가득 채워 질 때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이 말이 기약 없는 희망 고문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부터 그 일에서 손 뗄 수 있도록 주의력을 기울여 보자. 반복되고 의미 없는 일을 개선할 수는 없는지 고민해보자. 이 모든 게 어렵기만 하고 한계가 찾아왔다면 기회를 봐서 현재의 직무를 전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나는 희망한다. 일 자체가 기쁨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재미없는 일만 하기엔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되도록이면 바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얻은 교훈은 언제까지나 재부팅을 미룬다면 결국 포맷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본인에게 맞는 직무로 전환해 일에서 보람을 찾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개발자들이 갈구하는 발상의 전환이 이런 것이 아닌가도 싶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다르게 보는 것 말이다.

오늘은 기분전환 겸 맥주 한잔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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