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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책임질 게 많은 나이

by 엄태형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밖에 다른 부위와 비교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찌 된 셈인지 의아했지만, 확실한 건 이것이 꿈은 아니란 것이었다.”

-『변신』중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외판원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지만, 갑자기 벌레로 변한 그의 모습에 가족들은 혐오와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레고르가 끝까지 걱정했던 것은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보다 당장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 가족이었다. 소설 속에서 출근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런 그레고르의 모습은 마흔 즈음의 중년들이 느끼는 책임과 부담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흔은 흔히 말해 ‘책임질 게 참 많은 나이’다. 자녀의 양육, 부모님의 부양, 직장에서는 중간 관리자로써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언제나 책임이 부담스러운 것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알랭드 보통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임을 말이다. 그래. 그런 기분이 들게 하면서 심리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게 불안이란 놈의 본래 모습이다. 그레고르가 갑자기 벌레로 변한 것처럼 현재의 상황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다는 그런 기분은 우리를 쉽게 불안에 빠지게 한다.


사실 마흔이 되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도 ‘불안’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밀려와서는 나를 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이 바람이 지나가면 당분간은 괜찮아졌지만, 그 주기는 더욱 짧아져 불면증으로까지 이어졌다. 불안이 대표적인 증상이 ‘과잉행동’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마흔이 되고 겪은 불안은 달랐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불안은 꽤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어찌 됐든 나는 ‘불안’과 불편한 동행을 해야 했고, 이 반갑지 않은 동거가 조금은 편안해 지길 바랬다. 마흔이란 호칭이 좀 더 내게 친숙해졌을 때쯤 내가 깨달은 건, 이 세상에 불안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 걱정없어 보이는 친구도,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동료도,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연예인도, 명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정치인마저도 모두 불안에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보면 불안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치 못 하게 맞닥트려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삶이 이럴진대, 마흔쯤 오면 불안을 마냥 두려워할 게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떨쳐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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