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현 Jun 09. 2018

마이너리티 리포트 12
사연을 만든 그리스도인들

마이너리티 리포트 #12

빌 4:10-2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마크 스펠만(Marc Spelmann)의 골든 버저(Golden Buzzer)

     

https://youtu.be/Q3jege0p0dQ

2018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BGT), 마크 스펠만(Marc Spelmann)의 골든 버저(Golden Buzzer)


영국 최고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BGT)’의 2018년도 첫 번째 주 오디션에 한 마술사가 무대에 섰다. 그는 마흔여섯 살의 마크 스펠만(Marc Spelmann)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네 가지의 마술을 선보였다. 마술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원리를 알 수 있는 매우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간단한 마술이 골든 버저(Golden Buzzer)를 울렸다. 이 프로그램에서 골든 버저를 받은 사람은 심사위원들의 심사에 상관없이 라이브 쇼(Live show)로 직행할 수 있는 특혜를 얻는다.


마크 스펠만이 골든 버저를 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마술에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임신 중에 암에 걸려 힘든 투병을 했던 아내와 독한 항암제를 이겨내고 세상에 나온 딸의 이야기가 어떤 마술보다 더 마술 같은 기적이었다. 이 사연으로, 그가 펼친 마술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하고 예술성이 있는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마크 스펠만(Marc Spelmann)은 2018 시즌 첫 번째로 골든 버저(Golden Buzzer)를 받은 도전자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세상의 기준이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이고 통계적인 일등이 아닌, 내 마음속의 일등, 심정적 일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일등은 대부분 우리가 가진 어떤 사연과 관계가 있다.     


성경에는 그런 사연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사도바울과 빌립보교회 이야기다.




            

'마음의 일등' 빌립보교회 


사도바울이 사역하던 시대의 이름난 교회를 꼽자면 단연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교회는 최초의 교인들이 세운 모든 교회의 모교회이고, 사도들의 회의가 열렸던 기념비적인 교회다. 안디옥교회로 말하자면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워 ‘세계선교’라는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위대한 교회다. 유대교회를 대표하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를 대표하는 안디옥교회는 초대교회의 가장 큰 두 기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에게 있어 마음의 일등은, 교회의 시작인 예루살렘 교회도 아니고,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했던 안디옥교회도 아닌, 빌립보교회였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유럽에서 세운 첫 번째 교회다. 소아시아로 가려던 바울 일행의 계획이 자꾸만 틀어지던 중, 트로이로 내려갔다가 밤에 “와서 우릴 도우라!”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무작정 바다를 건너 빌립보로 향했다. 빌립보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의 퇴역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세운 도시였다. 빌립보는 로마 황제의 직할 도시가 되면서 모든 빌립보의 시민들이 로마 시민으로 승격되었다. 빌립보는 로마법을 본뜬 자신들만의 헌법을 가질 정도로 선진화된 도시였고,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풍요로운 도시였다.


환상을 보고 빌립보로 건너간 바울 일행은 그 도시에 회당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라도 유대인의 기도처를 찾기 위해 물가를 찾는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유대인 10명이 모여야 하는데, 보통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성문 밖에 흐르는 물가에 모여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유대인들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다. 덕분에 기도를 하러 간 곳에서 기도는 하지 못하고, 물가에 앉아있던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여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자주장사 루디아’였다.


성경을 아는 유대인이 한 명도 없는 이방인 도시에 복음이 전해졌고, 바울 일행은 그 복음으로 인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고난 중에도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간수의 가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빌립보에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것으로 산업을 삼던 빌립보 사람들의 소동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바울 일행은 금방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빌립보교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주축을 이루던 예루살렘 교회나 희랍 세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주축을 이루던 안디옥교회처럼 오래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신앙의 초보인 사람들, 유구한 전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모인 초신자들의 교회였다. 그들은 일등이 될 자격이나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교회였다. 그런 빌립보교회가 사도바울에게는 ‘마음의 일등’이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빌립보교회처럼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던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감옥의 위치가 로마였다고 하고, 어떤 학자들은 가이사랴였다고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 감옥이 에베소에 있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 하지만 그 감옥이 어디였든지, 바울은 큰 고난을 당하고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빌립보서를 읽다 보면 죽음을 불사한 바울의 각오를 읽어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고난 가운데,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토록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도들의 회의가 있던 예루살렘 교회도,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교회도 바울의 고난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교회는, 당시에는 그저 무명의 교회에 불과했던 빌립보교회였다. 그들은 여러 차례 바울의 쓸 것과 선교헌금을 보냈고, 심지어는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도록 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했다. 바울이 얼마나 그들에게 감사했는지는 빌립보서를 읽는 내내 느껴지는 감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심지어 그들이 베푼 이 도움을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로 간주할 정도였다.


전에 시골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는 건축으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채무를 갚는 것 외에 교회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계획을 세웠던 첫해부터 선교를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운 국내와 해외의 미자립교회들을 후원했고,  소속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는 바람에 소속 교회를 잃어버린 선교사를 교회에 소속하고 돕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의 형편도 어려운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반대하는 교인들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선교하는 일인데, 우리도 어렵지만, 할 수 있는 한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설득했다.


매일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고, 빠듯하지만 다달이 선교 후원을 하던 중에 선교지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급하게 몇 백만 원의 후원이 필요했다. 재무가 빠듯한 시골교회의 사정상,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나는 우리 교회가 그 금액을 감당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인들과 함께 선교지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던 날, 새벽기도회 시간에 빌립보서 4장 10절부터 20의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맨 앞에 앉아서 말씀을 읽던 재무부장 장로님이 펑펑 우시는 것이었다. 묵상이 끝나고 왜 우셨는지 궁금해서 장로님께 오늘의 묵상을 나눠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장로님이 묵상을 하다가 펑펑 우셨던 이유는,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가슴에 깊이 느껴지셨기 때문이었다. 빌립보교회의 도움에 절절이 고마워했던 바울의 마음이 우리가 돕고 있는 선교지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깊이 회개하게 되었다고 간증하셨다. “목사님, 우리가 꼭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목사님 우리가 꼭 해야 합니다.”라는 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우리가 그걸 감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장로님은 우리가 그걸 감당해야 한다고 하셨고, 결국은 교회가 그 금액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에도 그 달에도 그 해에도 교회는 결코 적자가 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히려 교회를 더 풍성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와 선교사님에게 우리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고 나서 얼마 후에 감옥에서 풀려났고, 몇 차례 더 빌립보교회를 방문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감사한 마음에 일부러 빌립보교회를 찾아가 그들과 함께 했다는 이야기다. 빌립보교회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행복했고, 바울은 빌립보교회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던 것이다.





함께여서 행복한 사람들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BGT)의 심사위원인 잉글랜드의 가수 알레샤 딕슨(Alesha Dixon)은 마크 스펠만(Marc Spelmann)의 마술을 심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I don`t care how you did it. It was magnificent. You've just take a magic to a whole new level, my friend."
“당신이 이 마술을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훌륭했어요. 당신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마술을 한 거예요.”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이 영상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는 스펠만이 어떤 기술로 이 마술을 만들어 냈는지 중요치 않다. 이 마술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 마술의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스토리, 사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에게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금액의 선교헌금을 보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사도바울의 선교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들이 손을 걷어붙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도바울은 행복했다. 이미 빈에 처할 줄도 알고, 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가져, 배고픔과 고통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래서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감옥에서의 고난조차 그리스도를 위한 기쁨의 사역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와 함께여서 행복했다.


빌립보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처럼 기념비적인 교회도 아니었고, 안디옥교회처럼 이름난 교회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난당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도바울을 도우며, 그와 함께 하나님 선교의 사역을 감당했기에, 주님을 위한 사연을 가진 교회가 되었고, 사도바울에게는 마음의 일등이 되었다.


나는 꿈이 있다. 나의 목회가 이런 사연이 있는 사역이 되었으면 하는 꿈이 있다. 우리 하늘빛교회가 이런 사연을 가진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누군가 우리에게,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 가슴 깊은 감동으로 말했듯이 “당신과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교회와 함께여서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주님도 “너희와 함께 해서 참 행복했구나.”라고 칭찬해 주시지 않을까?



빌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너리티 리포트 11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께 질문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