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현 Jun 27. 2021

절벽 위 마을

천사를 만난 사람들

높은 산 절벽 위에 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라고 해야 다 쓰러져 가는 집 여남은 채가 전부였다. 몇 해 전부터는 산 위에서 졸졸 흘러내려오던 물까지 말랐다. 마을 사람들의 삶은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말끔한 흰 옷을 입은 젊은이 하나가 산 위에서 내려왔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온몸에서 활기가 넘쳤다. 패배감에 젖어 살던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게 당당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건장한 젊은이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다. 그는 부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흰 옷을 입은 젊은이는 쓰러져 가는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왔다. 산 위로 올라가서, 온갖 낙엽과 나뭇가지들이 쌓여 막고 있던 물길도 다시 열어 주었다. 마을에는 다시 물이 흘렀고 쓰러져가는 집들은 예쁘게 단장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언제까지나 자기들과 함께 살기를 바랐다. 젊은이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여기서 계속 살아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던 장로들이 있었다. 그들은 흰 옷 입은 젊은이가 나타난 뒤로부터, 혹시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빼앗길까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할 때마다 이를 갈기 시작하다가 결국, 젊은이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쁜 소문들까지 꾸며내어 그를 비난했다. 처음에는 ‘설마...’하던 마을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내 젊은이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삶이, 흰 옷 입은 젊은이가 베푼 사랑과 헌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변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마을공동체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관계가 불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 그냥 입을 닫고 말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 달빛도 별빛도 없는 어둔 밤에, 마을의 장로들은 절벽이 있는 마을 끝으로 젊은이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절벽을 향해 그를 밀어 대기 시작했다. 그는 애써 버티며 자기를 밀치는 사람들에게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제발! 제발!”하며 애원했다. 그들은 “이건 다 네 잘못이야!”라고 소리쳤다. “너는 우리를 존경하지 않았어!” 젊은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더 잘할게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그들은 젊은이의 눈물 어린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하며 결국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 ... ... ...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절벽으로 떨어졌어야 할 젊은이가 오히려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그들은 놀라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흰 옷 입은 젊은이의 등 뒤에 펄럭거리는 날개가 보였다. 그에게는 날개가 있었다. 천사였다.


천사의 모습을 처음 본 그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다. 그들이 공포에 짓눌려 거꾸러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 몰래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마을 사람 중에 하나가 소리쳤다.


“그것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저분이 천사지 그럼 누구였겠어? 우리 마을에 해놓은 일을 봐! 천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겠어?”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았었다는 마냥 소리쳤다. 그러고는 천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천사님, 여기 이 못된 사람들은 전부 대가를 치를 겁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 노여움을 푸시고 내려오셔서 우리랑 같이 살아요!”


천사는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절벽 위 마을에 어떤 착한 젊은이도, 어떤 천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뚱보 아저씨네 행복 가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