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박사의 아름다운 변화 이야기
유모차를 밀고 가십니다.
허리는 꾸부정
주름지고 앙상한 손
할머니 다리 둘과 유모차 다리 넷
유모차 앞에 놓인 자그마한 벽돌
아기 대신 네모난 벽돌을 태우고
삐뚤뻬뜰지그재그
하세월에 마을회관에 가시려나
머리에 쌓인 소복한 눈
하루하루가 행복하신 듯
입가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
다리가 여섯,
오늘도 누죽걸산*을 실천합니다.
회관에 도착하신 어르신
감나무에 앉아있는 새를 가르치며 환갑이 가까운 아들에게 묻습니다.
“저게 뭐냐?”
“까치예요”
……
“저게 뭐냐?”
“까치예요”
마흔 번가량이나 묻고 답하고 계속됩니다.
아들의 인내심이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4살 때 저도 그랬겠지요”
엄마에게 묻고 또 묻고
“엄마, 저게 뭐냐?”
“까치란다”
……
“엄마, 저게 뭐야?”
“까치란다”…
어머님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저의 질문에 모두 답을 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의 인지능력이 더 좋았을 때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그래도 지금 어머님이 계셔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듯
“어머니, 까치예요”…..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정도 연락 오는 그의 젊은 아들은 이런 사실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