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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원 Dec 30. 2018

<김사원 표류기>

#9. 선

오늘도 어김없이 직출통보서가 올라왔다.

'주임님... 정말로 그 업체로 직출 가시는 게 맞으신가요?'

한번 생긴 의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내게도 시야라는 게 생겼다.

신입일 때만 하더라도, 당장에 내 앞에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일이 없을 때는 한껏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미어캣처럼

그런 내게도 변화는 찾아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삼청이의 효심에 감복한 용왕님이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해 준 것처럼

짬밥은 내게 시야를 선사했다. 짬밥이 이래서 무서운 건가 보다.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서, 외근을 많이 하는 직원들이 나도 처음에는 안쓰러웠다.

타 업체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들어가면서 업무를 본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유독 공휴일이나 휴일 다음날이면 직출을 많이 올린다거나, 금요일 3시만 되면 외근을 가서 직퇴하시는 분들을 보면 왜 꼭 굳이 이 시간에 가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방문을 하는 업체와 스케줄을 잡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부분도 있겠지만은 유독 꼭 저 두 타임을 고집하는 직원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외근을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 내에서 해야 할 업무가 쌓인다거나, 외근을 다녀왔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생기는 업무들이 존재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외근을 가면 왜 복귀를 하지 않는 것인지, 또 회사 내 업무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직원끼리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근을 악용해 개인의 휴무시간을 늘리는 것만 같아 괜히 내 배 아리가 꼴려온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은가?

내 기준에서는 이 부분은 선을 넘어섰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개인의 휴식을 보장받기 위해 사적인 용무를 업무 시간에 보는 직원들도 존재한다.

왜 병원 검진 예약을 점심시간에 안 잡고, 업무시간에 잡는 것인지도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럼 자네가 그 일을 방치하고 병원을 가게 되면 그 업무는 누구보고 처리하라는 것인가?

정말 몸이 안 좋고, 아프면 병가를 낸다거나 반차 휴가를 내면 될 것이지 꼭 그렇게 업무시간에 가야만 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우리 회사는 휴가를 내거나 병가에 대해 인색하지 않은 편인데 왜 굳이 업무시간에 가냔 말이다.

그리고 그거를 용인해주는 관리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던져버리고 가면 결국에 피해 보는 사람은 팀 내 짬이 안 되는 말단 사원한테 갈 것인데, 안 그래도 조직에 적응하고 일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친구한테 업무까지 던져버리면 어찌하란 말인가?


또 하나 더 있다.

우리 회사가 참 좋은 회사라고 생각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야근과 주말 근무에 대한 수당을 정확하게 지급해준다는 것이다. 

법에 명시되어있는 모든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회사가 과연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단언컨대 우리 회사는 정말 나이스 한 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악용하여 야근을 쓸 때 없이 많이 하는 직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대다수 회사가 그러하듯 야근의 횟수=업무의 량으로 평가하는 기조가 우리 회사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중에 충분히 다 할 수 있는 양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따박따박 올리신다.

그리고는 회사에서 야근 밥을 따박따박 챙겨 드시고, 일도 세월아 네월아 하며 태평성대를 누린다.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거시적인 명분과 야근 수당이라는 실리적인 이득,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밤낮으로 잦은 야근(양아치 짓거리)을 일삼는다. 

돈도 잘 벌면 밥은 좀 너희 집 가서 먹고, 일도 좀 파이팅해서 업무시간 중에 하면 안 되나?

화가 난다. 


거 너무 딱딱한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하러 온 것도 아니고, 돈을 벌려고 회사에 고용된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도리, 선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우리를 고용한 목적=노동력을 통한 재화가치 생산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목적=노동에 댓가인 돈

다 돈 때문이지 않은가?  

그럼 응당 그 돈에 논리에 맞게, 돈이 되는 값어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고, 회사도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고용주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하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더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니 좀 편하겠다고, 니 좀 더 배부르게 살겠다고 양아치 짓 좀 하지 마라. 

고마해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저분들은 아낌없이 퍼주고, 감싸주는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같은 회사에 대한 고마움도 좀 가졌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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