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아 Apr 18. 2021

꽃을 꽂으며

면장갑을 낀다. 장미의 뾰족한 가시는 손을 잘못 놀릴 때면 면장갑을 껴도 그 안으로 뚫고 들어와 손에 박히기 일쑤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뾰족한 가시가 되어 마음에 깊이 박히는 경우는 장미가시보다 더 아플 것 같다. 줄기 윗부분을 잡고 가시 제거기로 가시를 쳐내려 간다. 가시가 많고 줄기의 굵기가 두꺼우면 힘을 주어야 한다. 너무 힘을 주게 될라치면 장미 얼굴이 뎅그렁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장미 수백 송이의 가시를 제거하고 나면 바닥은 이파리와 가시로 수북이 쌓인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취하기 위하여 쳐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람도 자신의 모습 속에서 거짓 없이 투명되고 진실된 모습만을 취하게 한다면, 걸러지는 마음속의 내면의 모습은 얼마나 될까.     


바구니 안에 물기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비닐로 두르고 오아시스를 담는다. 자신의 몸이 물에 온전히 적셔진 상태의 오아시스는, 물기가 다 마를 때까지 꽃들의 수명을 좌지우지는 사명을 띠고 있다.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 바구니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오아시스에 장미와 어울리는 초록색 잎과 안개꽃을 조화롭게 꽂는다. 빨간 장미를 하나하나 옆으로 한 줄 두르고 그 위에 하얀 안개꽃으로 장미 위를 둘러쌓는다. 꽃 한 개를 포장해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은 단순하지만 다른 꽃들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무리 속에 있으니 어느 한 장미가 유난히 튀어 예뻐 보이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미도 한 개 한 개 얼굴이 조금씩 다르듯이, 사람도 개성과 얼굴이 다른 각자가 모여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그 속에서 혼자만이 느끼지 못하는 인생의 화합과 조화를 배우게 된다.      


이렇게 꽃아 둔 꽃들은 며칠 동안 살 수 있을까. 오아시스의 물이 건조되면서 꽃의 수명도 다 하게 된다. 드라이플라워조차 하지 못하는 꽃들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꽃아 둔 꽃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며칠 동안 눈과 코가 즐겁기 위해 꽃을 사는 사람도 있고, 꽃을 아름답게 매만지는 손길이 있을 뿐이다.      


사람도, 모든 물건에도 다 때가 있다. 낡고 닳아진 전구의 건전지, 헤어져 살결이 비치는 양말 뒤축, 손으로 쥐기 어려울 정도로 키가 작아진 몽당 색연필, 오래되고 낡아 아무리 닦아도 회생하기 어려운 빛바랜 가구들,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고 난 뒤에 남는 회한.      


수명은 어느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언제나 밝고 환한 전등처럼 조명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고 꺼져버린다. 그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만을 발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풍경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