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밤 농사, 그 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올라가는 삶과 산을 내려오는 삶의 마음가짐

by 태공

� 산을 오르던 날, 마음은 내려오고 있었다


아내와 농사 문제로 한바탕 다투고 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직 서로의 마음이 풀리지 않은 채,

저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작 농장에 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순간, 얼마 전 밤 농사 짓는 형님이


“아이들이랑 시간 되면 우리 농장 한 번 놀러 와”


했던 말이 떠올랐고, 전화를 걸어 형님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푸르른 하늘 아래, 형님의 밭은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산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눈으로 보기와 달리 몸으로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양파망 두 개 들고 올라가. 떨어진 밤 주우면 돼.”


형님이 말했고, 저는 딸을 업은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수록 경사는 가팔라졌고,

때로는 땅을 짚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힘듦과 복잡한 심정 속에서


땅에 떨어진 밤을 주우며 신나게 웃는 딸,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

그리고 마음속 복잡한 감정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바람.


이것들은 나의 마음을 넓혀 주며,

머리를 시원하게 하며 묵상에 빠져들게 하더군요.


양파망 가득 밤을 채우고 산을 내려오는 길,

딸은 제 손을 잡고 가볍게 걸었고


길은 여전히 경사졌지만,

저도 몸에 힘을 빼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내려왔습니다.


� 내려오는 마음, 그 안에서 발견한 진짜 삶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제 주변엔 어떻게든 ‘더 올라가려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높아지기 위한 경쟁 속에서 서로 상처주고,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며,

자연은 그런 식으로 힘겨운 오르막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습니다.

자연은 때로 우리에게

힘을 빼고, 내려놓고, 순응하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좋은 작물, 더 많은 수확, 더 높은 시세를 바라지만,

결국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전날 아내와 다퉜던 것도 결국

‘내 방식대로 이끌고자 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내를 끌고 가고 싶었던 욕심.

그것이 갈등의 씨앗이었지요.


� 선악과 이전,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태초의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풍족함 속에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자신을 입히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선악과(선과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택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내 중심(기준)’을 붙잡고

내 중심(기준)에서의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가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

내가 스스로 힘을 다해 이루려 하고

높아지고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되어버렸지요.


삶은 점점 산을 오르듯 고달퍼졌고,

우리는 그 산길에서 넘어지고, 지치고, 외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기 전 그 전에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그 질문은 제게 새로운 사고를 열어주었습니다.


창조주의 마음을 품고,

내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은혜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 삶은

고난이 아닌 환대이고,

소유가 아닌 나눔이며,

집착이 아닌 은혜였습니다.


삶이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산을 내려오는 듯한 가벼움으로 변하더군요.

[7년 후, 가족들과 다시 찾은 그곳]


� 이제는 힘을 빼는 연습을 하려 합니다


사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내가 어떻게든 살아가보려는,

마치 산을 오르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산을 내려오는 마음으로 바꾸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이끌려고 하기보다,

도우려고 하고,

주도하려 하기보다,

응원하려 합니다.


대전에서 레드향 농사를 하면서

이 깨달음은 더 자주 찾아옵니다.


애써 키운 열매들이

여름 끝 무렵 알 수 없는 더위로 3분의 1,

때로는 절반 이상 열매가 터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열매로

예상하지 못한 은혜를 경험할 때,

내가 애쓴 것보다

자연과 하나님의 손길이 더 크다는 걸 실감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는 연습을 하며 살고자 합니다.


일도, 관계도, 농사도,

그리고 자녀를 키우는 일조차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차라리 이끌림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 풍성하고 온전한 열매를 맺는 길이라는 것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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