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하 Nov 15. 2019

조의 #1

표류 중입니다.


할머니께


할머니, 얼마 전 당신 자매의 부군이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대들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소복이 슬픔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몇 해 전 가장 슬픈 날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떠나시던 날, 저는 살아가는 우주의 한쪽을 잃었습니다. 가끔 비틀거리는 이유는 그대를 상실한 마음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이 한쪽으로만 기울어져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들고 어지럽지만 괜찮습니다. 그것 또한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휘청거리는 삶은 저의 숙명이고, 소멸한 세상을 정중하게 마주하는 것은 그대가 물려준 유산이니 묵묵히 그 짐을 지고자 합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며 삶의 굽이굽이 마다 새겨 놓은 향기는 다채로운데 떠날 땐 하나의 향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이처럼 안타까운 게 있을까요? 그래서 떠나는 이가 남겨온 생의 향기를 기억하며 정중하게 보내는 일, 이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겠지요.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울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에 울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미련 없이 우주를 털어내고 떠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저는 소나기가 되었습니다. 부재, 공허, 그리움 그리고 죽음 등등 그대 몫의 이런저런 질문이 허공에 떠다니며 무한히 부유할 것만 같습니다. 깡촌 시골에서 평생 일만 하다가 마감한 생을 위해 그렇게 대답 없는 질문이라도 자유롭기를.....


할머니, 장례식장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그대의 형제를 마주하니 또다시 저의 추는 한쪽으로 침전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살아남은 자매의 얼굴과 그림자에 그대가 깃들었습니다. 이들에게 드리운 깊게 팬 시간의 주름을 더듬어 나가며 그대의 온기를 다시 느끼고자 욕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온 것은 다정한 자매의 얼굴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련으로부터는 도망치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습니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입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하는 인간은 한없이 슬픈 존재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고 노래한 시인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것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대를 추억하는 슬픔이 사라지는 게 두렵습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도 두렵고 부재한 것을 금시에 잊는 것도 두렵습니다. 이래저래 전 용기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못난 손자가 못난 소리만 합니다. 그대라는 그리움이 짙게 드리워 있는 까닭에 가끔 못나게 비틀 대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마주할 그대를 볼 낯은 분명히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서 나던 도라지꽃 향이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2017년 5월 14일, 장례식을 다녀와서

작가의 이전글 바다는 늘 후회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