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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Nov 23. 2019

비행飛行,비행非行,비행悲行

월간 小토리텔링


새벽녘부터 잠을 쫓는 새끼의 울음소리는 어미의 고단함을 물리친다. 어제 구해 온 먹이를 먹은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끼는 왜 그리 서글프게 우는 것일까? 어미는 풍족하게 먹이를 구해다 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지친 날개를 펼친다.


어미 알바트로스는 어제도 쉼없이 1000KM 가까이 날아 아침부터 보채는 새끼를 위해 먹이를 찾아나섰다. 무슨 탓인지 물고기가 예전만큼 잡히질 않고 적잖이 보이던 해초도 찾기가 힘들다. 이렇게 며칠을 둥지를 비운채 떠돌아 다녀야 하는건 아닐지 근심이 커져가던 차에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눈에 밟힌다. 해초들이 자라던 자리를 밀어내고 어느 날부터 바다 위를 조금은 낯선 색깔로 물들이고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아찔한 호기심이 생긴다. 밀려오는 고단함이 온 몸에 허기를 끼얹자 어떤 기대감으로 젖은 눈길이 이방인에게로 향한다.


저건 무엇일까? 해초처럼 둥둥 떠다니는 걸 보니 어쩌면 비슷한 먹이일까? 통통하거나 길쭉하게 생긴 것은 물고기인가? 어미의 머리 속이 복잡해 진다. 하지만 오랜 시간 허기진 긴 비행을 했더니 머리 속이 아득해지며 둥지에서 빽빽 울어대고 있을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머리 속이 하얗게 흐려진다. 수천년 동안 대물림 된 붉은 피 속에 녹아있는 생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알 수 없는 위협을 멀리하던 습성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또 다른 강력한 생존 본능 앞에서 어느새 불안함을 잠재우는 동기로 변이한다.


경계심을 한 아름 넓은 두 날개에 지고 바다 위를 빙글빙글 한참을 돈다. 바다 위로 불던 바람이 잔잔히 잦아들 찰나, 재빨리 날개를 접고 바다 쪽으로 신속하게 활강을 한다. 순식간에 표정없이 언제까지나 해수면을 부유할 것만 같던 새빨간 조각은 어미의 부리에 꼼짝없이 잡히고 만다. 날렵하고 매끈한 부리에 익숙지 않은 딱딱하고 거친 질감이 전해졌지만 몇 번 이리저리 흔들어 보다 이내 목을 쳐들고 꿀꺽 삼킨다. 배 속으로 그동안 느끼지 못한 포만감이 전해진다. 빈털털이 같던 몸에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지자 어미는 둥지에서 울고 있을 새끼가 먼저 생각난다.


어미가 둥지에 도착했을 때 새끼들은 배고픔에 잠들어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새끼들 옆으로 몸 통 한가득 담아온 그것들을 개워낸다. 어미의 거친 구역질 소리에 새끼들이 무거운 눈꺼풀을 열어젖히고 또 한바탕 울어댄다. 어미는 부리로 새끼들 하나하나 쓰다듬고 새어본다. 새끼가 자라날수록 위협에 노출되기 쉬운 탓에 둥지를 떠날 때 마다 불안이 엄습하지만 오늘은 새끼들의 배고품을 채워줄 먹을거리가 한 가득이라 근심은 둥지 위로 빠져있는 깃털처럼 가볍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미는 멀리 날아 다니기가 점점 힘이 든다. 오늘 아침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불구하고 잠에서 겨우 깼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는 가시질 않고 목 끝까지 거친 숨이 차오른다. 파도의 부서지는 소리도 뚫던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연무 짙은 새벽 바다처럼 고요하다. 하늘은 어느 때보다 넓고 쓸쓸하다 


울음 소리를 상실한 바다의 적막은 영원히 썩지 않는 흔적으로 공포의 인장을 모래사장에 남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삼켜온 것이 제 무덤이었다. 생을 마감한 육신을 덮는 무덤은 슬플지언정 절망적이진 않지만 사는 동안 안으로 품어온 무덤은 희망을 단절시킨다.


바닥에 내팽개진 무덤이 마치 누군가의 흉물스런 얼굴처럼 흩어진다. 아무도 울지 않지만 모두가 아프고 병들었다. 



성곡미술관에서 관람한 전시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

마지막 문장은 이성복 시인의 ‘그날’에 쓰여진 한 문장을 인용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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