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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Apr 28. 2018

예술가, 사회에 목소리 내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18
01 마크 테, 말레이시아의 완벽한 미래-제4장
02 율리안 헤첼, 베네팩토리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어떤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공연예술 융복합 트렌드를 살펴보는 수업의 사례 발표 자리였다. 아주 잠깐 고민하고 답했다.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 혹은 몸짓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요.”


최근 있었던 공연들을 떠올려 봤다. 어떤 작품을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관객만 있다면 무엇을 하든 작품이 되는 세상이다. 안무가의 역할에 연출과 무대 디자인이 포함돼 있다는 건 고릿적 이야기다. 장르 간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공연의 색깔은 더욱 다양해졌다. 그런 가운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요건은 두 가지다. 표현이나 구성 방식이 어떠하든 명확한 메시지를 품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 혹은 주변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춤만으로 관객을 감동하게 하고 극장을 떠나는 내내 되새김질하게 하는 공연.


3월과 4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에 초대된 마크 테(Mark Teh)와 율리안 헤첼(Julian Hetzel)은 전자에 해당하는 예술가다. 이들은 예술이라는 장치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은 정부의 방향에 대한 반향이기도,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마크 테, 말레이시아의 완벽한 미래(제4장) (c)국립현대미술관
무분별한 개발로 말레이시아 곳곳에 고속도로와 대형 광고판이 설치됐지만 정작 콘텐츠가 없어 텅 비어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c)Mark Teh


마크 테의 ‹말레이시아의 완벽한 미래(The Complete Futures of Malaysia)›는 국가 주도의 미래 계획에 대해 반기를 든다. 1981년생인 그가 고작 열 살일 때 발표된 ‘비전 2020’은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정부의 국가 발전 계획이다. 그러나 2017년까지도 뚜렷한 변화를 만들지 못한 이 계획을 무시하고 정부는 다시금 ‘국가 변혁 2050’을 내세운다. 마크 테는 이러한 “약속된 미래의 연기”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분리된 채 허상의 표어로만 존재하는 미래, 사람들은 정부의 허황된 메시지에 더 이상 관조하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마크 테는 광장 등 공간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해석하는가 하면, 독립의 상징이었던 공원이 다시 고층빌딩으로 개발되는 과정을 도식화해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한다. ‹말레이시아의 완벽한 미래›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현재 진행형 프로젝트를 지향한다. 2017년부터 전시, 공연,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4장은 렉처 형태였다. 한 시간여 동안 마련된 자리를 통해 그가 이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인 공연, 퍼포먼스, 전시, 관객 참여형 작업 등을 살펴봤다. 예술가 본연의 작업이 아니라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의 방법을 지향하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목소리 낼 수 있으며, 사회적 행위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말해줬다.


율리안 헤첼 (c)국립현대미술관


율리안 헤첼은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닌, 자선 후원가(benefactor)라고 부른다. 그가 무대에 서자마자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경영자이지만 예술가와 다르지 않다고 덧붙인다. 그의 대표작 ‘후원자’는 자신이 받은 지원금 2,000유로를 매일 1유로씩 아프리카에 기부하는 퍼포먼스다. 2010년 무렵 정부가 경제논리에 입각해 예술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데서 이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원조국이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자원을 개발하는 것과 예술을 동일한 차원에서 언급한 정치인의 발언이 자극이 됐다. “예술과 개발 원조를 동일하게 생각해 보자.” 그는 예술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예술을 위해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한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율리안 헤첼은 이 작품이 성공한 뒤로 전 세계에 초청받아 렉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자신의 퍼포먼스의 주인공이자 후원의 대상이었던 아이의 미래를 자신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책임지게 되었고, 이러한 자리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자신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율리안 헤첼, 베네팩토리 (c)Ben and Matrin Photography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무대에서 후속작 ‘죄책감 공장’도 함께 소개했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죄책감에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셀프인간비누’라 이름 붙인 이 비누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작품으로, 과잉으로 축적된 잉여물과 죄책감을 소재로 한다. 그는 여러 노력 끝에 지방흡입술로 추출한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법적인 규제로 인해 이 물건을 ‘비누’라 부를 수는 없지만, 셀프인간비누는 예술의 요소를 담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자본의 순환구조를 상기시킨다. 손을 더럽히고, 다시 씻어내는 행위를 통해 그는 자본주의의 창조적 순환을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이 완성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들으며 순간순간 무릎을 탁 쳤다. 현시대의 모호한 환경에서의 예술적 권위를 추구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창조적, 경제적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과연, 예술가와 경영자 양쪽 모두 그에게 적절한 수식어라고 생각했다. 율리안 헤첼의 작업은 사회·경제가 예술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한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내’ 작업만 하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예술가라면 얼마나 예술적으로 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짚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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