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유럽에서 극장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 나라의 예술을 온전히 체득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니까.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뮤지컬을, 유럽에선 오페라를 봐야 한다는 배낭여행족의 불문율(!)은 사실 공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극장에 간다는 것, 그곳의 극장문화를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색다르고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드디어 런던이다! 긴 여행의 종착지이자, 가장 기대했던 도시. 어쩐지 이곳이 매우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서울과 아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영국 런던은 ‘공연예술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도시이니 말이다. 뮤지컬을 비롯해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예술의 장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런던에는 극장도 많은데 언제 다 보지?” 미술관뿐 아니라 극장도 수없이 많다. 구역만 넘어가면 수없이 많은 극장이 손짓하고 있었다. 일단 광활한 원형극장을 자랑하는 로열 앨버트홀(Royal Albert Hall)과 무용 전용극장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를 살펴보곤 이곳으로 향했다. 런던에 왔다면 이곳에서 반드시 공연 한 편을 볼 것을 추천한다. 바로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ROH)이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지역에 위치해 때론 극장 이름 대신 ‘코번트 가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을 대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리 오페라와 가르니에 극장처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도 로열 오페라(RO)와 로열 발레(RB),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상주하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영화 속에서 빌리가 다녔던) 로열 발레학교가 위치해 있다. 극장은 몇 번의 재건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고, 굳이 비교하자면 파리 가르니에와 비슷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지역의 부유층과 왕실을 대상으로 시작한 공연예술을 처음 선보인 곳이니 화려하기로는 영국에서 최고일 것이다.
세련되고 화려한 영국풍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관객들을 맞이하는 서비스가 극장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입구로 들어서면 정중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티켓 오피스가 있다.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결제한 카드를 확인하고 티켓을 내주는 것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부분이다. ROH의 상징과 같은 빨간 커버에 티켓과 프로그램북 바우처, 카드 영수증을 정리해 끼워주는데 티켓에 부착된 은색의 로고 스티커까지도 공연을 보러 온 관객에게 특별함을 선물한다.
가르니에 극장처럼 크고 화려한 기념품 숍도 관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시즌 프로그램북, 엽서, 화보집, 잡지, DVD 등 고전적인 것부터 액세서리, 아이패드 케이스까지 최신의 취향을 고려한 MD가 가득하다. 구경을 마치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티켓을 확인하고 들어서자 발레 의상에 관한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오케스트라 스톨(Orchestra Stalls, 1층 객석) 출입구로 이어졌다.
두 층 올라가면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장 핫한(!) 공간인 폴 햄린 홀(Paul Hamlyn Hall)이 나타난다. 애프터눈 티와 식사는 물론 샴페인을 즐길 수 있는 바가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공연이 없어도 단독으로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티켓을 예매할 때면 자동으로 레스토랑도 예약하겠냐고 물어볼 정도로 이들은 보는 것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문화를 무척 중요시 생각한다. 그래서 공연 전에는 물론, 인터미션 때도 객석을 빠져나와 무언가를 즐기는 이들이 참 많았다.
먹는 걸로 하자면 이 극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명물, 아이스크림. 인터미션 중간중간 폴 햄린 홀뿐 아니라 극장 곳곳에서 판매하는 이 아이스크림은 ‘먹는 것이 금지된’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스낵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물론, 맛은 아주 훌륭하다.
오직 1층 객석과 박스석으로만 구성된 유럽의 고전적인 극장과 요즘 흔히 만날 수 있는 현대식 극장의 중간쯤이라 할 수 있는 ROH의 객석 구조는 1층부터 차례로 오케스트라 스톨(Orchestra Stalls), 스톨 서클(Stalls Circle), 그랜드 티어(Grand Tier), 발코니(Balcony), 앰피시어터(Amphitheatre)로 구성된다. 이곳에는 흔히 ‘로열 할머니’라 불리는 부유한 노년층이 주 관람객층인데, 이들이 주로 자리하는 스톨부터 발코니석까지가 주로 상석이라고 한다. 가장 꼭대기인 앰피시어터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주로 차지하곤 한다.
무대도, 공연도 멋지지만 전 관객이 동그랗게 감싸는 형태로 마치 둘러앉은 기분을 느끼며 공연을 보는 건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공연이 좋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Royal’이라는 왕실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고, 꼭 다시 오고 싶은 멋진 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