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발레단의 공연 두 편
극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공연의 막이 오르면 더욱 빛이 난다. 극장만 보고, 미술관만 보고 그 나라의 예술을 알게 됐다고 할 수는 없는 법.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공연의 감동을 전한다.
세계 3대 발레단이니, 5대 발레단이니 이런 말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발레단’을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가 바로 영국 로열 발레단(Royal Ballet)이다. 1931년 창단한 빅 웰스 발레단을 모태로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을 거쳐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에 상주하는 단체가 되었고, 1957년 왕실의 헌장을 받아 비로소 로열 발레단과 로열 발레학교로 거듭났다.
‘세계적인’의 유무를 떠나 로열 발레단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발레단만의 스타일이 아주 뚜렷하기 때문이다. 무용수 개개인의 스타일과 방식을 존중하는 미국의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merican Ballet Theater)와 대조되는 부분인데, 로열 발레단은 이곳 스타일을 온전히 체득한 무용수만을 선발하거나 좋은 무용수를 영입해 완전히 로열 스타일로 거듭나게 할 만큼 ‘춤 스타일’에 대해 굳건한 입장을 보인다. 어쩌면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덕분에 로열 발레단의 위상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로열 발레단을 거쳐간 무용수와 안무가들을 보자. 전설적인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Frederick Ashton)과 케네스 맥밀런(Kenneth MacMillan)이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20세기 이후 떠오르는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와 크리스토퍼 휠든(Christopher Wheeldon)이 현재 상주 안무가로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세기의 커플 마고트 폰테인(Margot Fonteyn)과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의 무대도 이곳이었다.
닷새 동안 런던에 머물면서 주말을 이용해 로열 발레단의 공연을 봤다.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선보이는 <돈키호테>를 보면서 무용수의 실력뿐 아니라 안무와 제작까지 망라하는 이 발레단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맥밀런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침 함부르크 발레단에서 노이마이어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온 터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신구를 오가는 두 작품을 보고나니 로열 발레단이 더욱 좋아질 수밖에.
로열 발레단이 2013/2014 시즌 오프닝으로 카를로스 아코스타(Carlos Acosta)의 새로운 <돈키호테>를 올렸다. 평단의 반응이 어떻든 안무가가 아닌 발레단이 키운 무용수가 전막 작품을 올린다는 점에서 발레단의 자부심이 엿볼 수 있었다.
<돈키호테>는 <백조의 호수>만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한국 국립발레단도 재안무한 돈키호테를 선보인 바 있다. 때문에 이번 로열 발레단의 새 프로덕션 역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연출가나 안무가가 아닌 무용수가 안무부터 연출까지 총감독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코스타는 발레 <돈키호테>에 대해 재밌고(funny), 힘이 넘치며(energetic), 장난기 많고(playful), 섹시한(sexy)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프로덕션은 쉽고 친절한 이야기 전개가 눈에 띄었고, “올라!”와 같이 무용수들이 소리를 내 분위기를 더욱 신나게 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1막이 시작되면 푸른 하늘색의 배경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집 모양의 세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막이 돈키호테가 읽던 책처럼 펼쳐지고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무대가 열리는데, 무대 위의 세트가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의상은 특별히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이채롭게도 무대와는 잘 어울렸다. 안무에 있어서는 몇몇 부분은 완전히 바꾸고, 그 외의 몇 군데는 그대로 사용해 조화를 추구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코스타는 선택과 집중만으로도 자신만의 완전한 프로덕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도 훌륭했던 1막에 비해 2막과 3막은 다소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눈이 즐거웠던 무대였다. 2막의 배경은 초고화질의 영화를 보는 듯 화려함의 향연이었다.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그린 2막 1장의 배경과 놀이동산 같은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2장의 배경 덕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돈키호테>의 핵심인 풍차로 뛰어드는 장면에서는 작았던 풍차가 점점 큰 크기로 확대되면서 실물감을 자아냈다. 2장에서는 전반적인 템포를 빠르게 사용해 발랄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살렸다. 3막은 특히나 무용수들의 바리에이션이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몇 개의 테이블을 이용해 그 위에서 바질과 키트리, 에스파다가 춤추는 장면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으며 주역들의 춤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이날 키트리는 아카네 타카다(Akane Takada)가, 바질은 스티븐 맥레이(Steven Mcrae)가 맡았다. 타카다는 키트리 정도는 맡을 수 있는 테크닉의 소유했으나 연기력이나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반면 맥레이는 원작 속 바질 캐릭터 그 자체였다. 오랜 무대경험에서 나오는 능숙한 마임과 연기, 화려한 테크닉까지. 많은 관객들의 환호성을 받기에 충분했으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서포트를 선보였다. 여기에 돈키호테, 산초 판자, 로렌조, 가마슈, 에스파다, 메르세데스 등 모든 솔리스트들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아코스타의 안무나 연출 역시 훌륭했지만 새로운 프로덕션을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무용수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모든 무용수가 무대를 즐기면서 작품에 푹 젖어드는 모습이 좋았고, 깔끔하면서도 완전한 로열 발레단만의 춤 스타일로 하여금 실력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코스타가 의도한 ‘a feel-good ballet’처럼 관객들 모두 무대에 푹 빠져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는 모습이 무척 즐거웠던 밤이다.
과연 케네스 맥밀런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계초연한 극장답다! 요즘 시대에 굳이 ‘원전’을 따지냐고 할 수 있겠지만,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난 셰익스피어는 달랐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따지는 것은 미뤄두자. 확실한 것은 로열 발레단에서 올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케네스 맥밀런의 원전에 가장 가깝다는 점이다. 게다가 세계초연 이후 450회 이상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 했다고 하니 원숙미에 있어서는 따라갈 자가 없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세밀하게 작품에 반영한 맥밀런의 안무는 로잘린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는 로미오의 모습이 비쳐지며 시작된다. 이어 흥겨운 음악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화려한 발구름이 돋보이는 안무가 펼쳐지는데, 로열 발레단의 군무진이 추는 이 장면은 몸 방향이나 박자, 테크닉까지 아주 섬세하고 완벽했다. 시작한지 몇 분 안 되서 벌써 감탄이라니…. 아주 정확하면서도 섬세하고,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로열 발레단의 스타일에서 비롯한 감동일까.
이 날 줄리엣을 맡은 로렌 커트버슨(Lauren Cuthbertson)은 비록 어리고 아리따운 소녀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연기만큼은 관객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었다. 로미오 역의 페데리코 보넬리(Federico Bonelli)는 훈훈한 외모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정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이 커플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한 묘사와 해석으로 작품을 힘 있게 이끌어갔다.
작품을 보고 있으니 안무가의 힘도 느껴졌다. 맥밀런만큼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로맨틱하게 사용하는 안무가가 있을까.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순간, 발코니를 두고 남녀가 가만히 바라보다 의상을 휘날리며 달리는 장면, 그리고 로맨틱한 키스씬까지 음악과 결합한 모든 장면이 흡인력 있게 이뤄졌다.
절정으로 치닫는 3막에서는 줄리엣을 적극적인 여성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침실을 떠나는 로미오를 붙들고, 아버지를 강하게 부인하며, 결국 마지막 방법을 위해 사제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이 가운데 어쩔 줄 모르는 한 여성이 아닌,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때면 항상 뭔가 어설프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 생각했던 마지막 죽음 장면은 탄탄한 설정으로 인해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19일 공연은 그리 훌륭한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무엇보다 발레단의 실력을 좌우하는 것이 군무진의 역할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스타 무용수를 초청한다면 한 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실력이 아니다. 수십 년간 탄탄하고 고집스럽게 쌓아온 저력이 바로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