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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Oct 02. 2015

세상이 뒤집히던 날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

다섯 명의 배우가 움직이는 활자 위를 마구 달린다. 넘실대는 파도 위를 누비더니, 뜨거운 용암 위에서 몸을 뒤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공중에서 펼쳐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예술 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가 개막을 알렸다. '길에서 놀자'라는 슬로건 하에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다.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 시민청, 세종대로, 청계천로, 덕수궁길 등 서울시내 곳곳이 거리예술로 물들고 있다.


1일, 개막작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


1일 저녁, 서울광장에서는 개막작 <세상이 뒤집히던 날(As The World Tipped)>이 축제의 포문을 열었다. 영국의 와이어드 에어리얼 씨어터(Wired Aerial Theatre)의 작품으로, 장르를 따지자면 거리예술 중에서도 '공중극'이라 할 수 있겠다. 오전에 비가 쏟아진 탓에 날씨는 급격히 추워졌고 설상가상 강풍이 몰아쳤다. 특히 바람에 예민한 작품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됐다.


며칠 전부터 서울광장 한편에 서있던 50미터 높이에 달하는 크레인은 이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스크린이 수직으로 세워지고, 그 위에선 아슬아슬한 공중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그린 장면. 무대의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공중에 세워진 무대와 배우들


첫 장면은 사무실. 앞쪽에 국제연합(UN) 휘장이 세워진다. 직원들이 수많은 문서더미를 휘젓고 있다. 마임과 함께 스피커를 통해 대사가 들려온다. 서로 걱정만 늘어놓을 뿐 해결책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면서 눕혀져 있던 무대의 경사가 아찔해진다. 스크린에는 전 세계에서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 재난상황이 비쳐진다. 네팔 대지진의 현장, 뉴스로 보도되는 자연재해와 범죄, 전쟁의 모습, 그리고 온갖 기계의 등장까지….


<세상이 뒤집히던 날>은 2009년 12월 진행된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안을 찾기 위해 진행됐던 당시 회의는 의견 교환과 논의는 있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기후변화를 토대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위태로운 재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위험을 경고한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무대가 이러한 환경문제가 가져올 '세상이 뒤집힐 날'을 대변하고 있다.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여러 영상과 짜임새가 돋보이는 구성, 특히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에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압권이었다.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과 기계적인 사운드의 조화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움직임이 기계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100% 수동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오르락내리락 수직 무대를 자유롭게 누비는 다섯 명의 배우들에게는 숨은 파트너가 있었다. 함께 줄에 매달려 이들의 위치를 조정해주는 또 다른 배우인 셈이다. 배우와 파트너가 각각 커플을 이루어 하나의 도르래를 움직인다. 그러니까 파트너가 내려가면 배우는 상승하게 되고, 파트너가 올라가면 배우는 하강하는 것이다. 무대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한 이 시대에 핵심기술을 오직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공중 퍼포먼스가 더욱 경이로워 보였다.



지금까지 나는 거리예술을 공연예술과 분리해왔다. 거리예술의 본질은 '예술'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아름다운 퍼포먼스와 주제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연출을 보라. 이번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작 <세상이 뒤집히던 날>은 나의 편견을 완전히 깨부순 작품이었다.



*영국 와이어드 에어리얼 씨어터의 <세상이 뒤집히던 날>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저녁 8시, 서울광장

*하이서울페스티벌 www.hiseoulf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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