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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an 31. 2016

젊은 무용가의 값진 도전

조용진 안무 <기본활용법>

까만 수트에 까만 선글라스. 화이트 앤 블랙으로 '간지나게' 차려입은 두 남자가 무대에 들어선다. 키도 외모도 흡사한 두 무용수는 몇몇 동작을 반복, 변주해가며 재치있는 춤을 선보인다. <Ballet101>과 같은 소품작이 이미 대중에게 친숙하고, 기본적인 동작이나 안무 메소드를 활용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드는 방법이 모던발레나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흔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춤이 그리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국립무용단의 조용진이 선보인 <기본활용법>은 의미의 면에서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기본활용법>의 안무가 조용진 (사진제공=전강인/국립극장)

제목의 '기본'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명사적 의미 외에도 한국무용 연습실에서 매일같이 춤추는 '기본'을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국립기본' '이대기본' '예고기본' 등 가르치는 주체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무용의 '기본'은 발레 클래스에서의 바와 센터 워크처럼 연습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다. 무용수라면 무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만두는 때까지 한순간도 뗄 수 없는 지겨운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춤을 이루는 탯줄이기도 한 애증의 관계일테다. "우리 지금까지 기본 몇 번 했을까?" "한 천 번?" 작품 내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메신저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젊은 무용가들은 늘 고민한다. 배우는 대로 만들어진 나의 춤을 어떻게 깨고 나와 새롭게 할 수 있을지, 지금까지 배워온 동작은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춤계의 트렌드는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지, 또 '무용'이라는 예술을 어떻게 대중에게 가깝게 느끼게 할 수 있을지. 조용진의 안무작업에는 이러한 고민이 배어있다. 그래서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두 무용가가 재해석한 살풀이 (사진제공=전강인/국립극장)


"한국무용은 왜 한국무용이야? 한국사람이 추니까 한국무용인가?" "사람들은 한국무용이라고 하면 전통만 추는 줄 알겠지."  특히 발레나 컨템에 비해 우리춤을 추는 젊은 무용가들의 고민은 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이끌어 갈 한국춤의 미래 역시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재화의 장구반주에 맞춰 춤 추는 조용진의 살풀이 춤사위에서 그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손뼉과 발구름 장단에 기본 동작을 변형해 조합한 것 역시 흥미로웠는데, 자유로운 움직임에도 그간 쌓아온 '기본'은 그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 들숨과 날숨, 맺고 푸는 한국무용의 기본을 토대로 살린 다채로운 동작에 관객들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DJ소울스케이프 (사진제공=전강인/국립극장)


극장예술로 시작한 발레나 규정된 움직임에 반하며 등장한 현대무용과 달리 한국무용은 우리네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전통무용이 기방의 춤에서 시작했다고 하나 그조차 선조들의 삶의 일부 아니었던가. 조용진, 이재화 두 무용수의 들썩이는 어깻짓과 바닥과 마주하는 야무진 발디딤은 일상과 예술이 한 끗 차이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기본의 굿거리 장단과 DJ소울스케이프가 선보이는 사운드의 조합은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국적'인 현대의 춤은 어렵지 않게,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의 열린 무대에서 가능하고 있었다.


<기본활용법>의 두 무용수, 조용진과 이재화 (사진제공=전강인/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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