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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Dec 04. 2016

공간을 바꾸는 움직임

문화역서울 284에서 만난 '바디 콘서트'

페스티벌 284 '영웅본색'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바디 콘서트'(2010)

2016년 12월 3~4일, 문화역서울 284



지난 10월부터 문화역서울 284에서 흥미로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페스티벌 284 '영웅본색'. 건축, 전시, 공연, 영화, 워크숍, 관객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융복합 예술축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요즘 시류가 그러하니 융복합을 추구하나 보다 싶었는데, 사실 문화역서울 284는 그 공간 자체가 장르의 융합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공간을 200% 살린 기획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전시 관람이나 페스티벌 안내가 아니라,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공연 소식을 통해 이 페스티벌을 알게 되었다. 2010년 초연 이후, 숱한 무대를 통해 자주 공연 소식을 알렸지만 정작 실제로 본 적은 없었던 '바디 콘서트'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주말 관람객을 위한 특별공연인줄 알았는데,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된 공연이었다. 10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여러 장르의 퍼포먼스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중 '바디 콘서트'가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영웅본색'이라는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 시대의 '영웅'에 관한 모든 것을 주제로 한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영웅을 품고 살아간다." 이 한 문장이 페스티벌 전체를 함축한다. 전시,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한데 꾸려졌다. 스폰지를 깎아 만든 니케의 상과 화려한 기둥은, 영웅의 겉모습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꼬집는다. 평범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영웅의 삶을 기념하듯 꾸며놓은 방에서 관람객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새삼 내 마음 속의 영웅인 우리 아버지를 떠올려봤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는 3등 대합실에서 진행됐다. 양쪽에 기차를 탈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두 개의 문, 아마도 몇 개의 벤치가 있었을 공간이다. 한쪽에는 층계가 있는 가설객석이 설치됐고, 사방에는 트러스트를 세워 조명을 달았다. 무용수들이 설 공간에는 댄스 플로어는 커녕, 동그란 환기구 몇개가 바닥으로부터 튀어나와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공연을 올리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이 채 갖춰지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 이들은 무엇이 문제가 되겠냐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으로 공연 시작 전 무대에 등장해 몸을 풀고 있었다. 데워지지 않은 공기, 미끄러워 보이는 바닥, 너무나 가깝게 자리한 관객들. 그런데 음악이 흐르고 공연이 시작되니 그 모든 것들이 공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무엇을 걱정했단 말인가.


김보람의 춤은, 경계가 없다. 다양한 장르의 춤에서 특징을 끌어내 그만의 방식으로 정리한다. 현대무용은 물론, 한국무용, 발레, 재즈, 힙합 등 모든 춤이 한데 어우러진다. '바디 콘서트'는 그런 그의 스타일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온갖 동작과 신체 분절을 사용하고, 집중과 분산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구성으로 관객은 지루할 틈 없이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 초연 후 6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인기를 모으며 꾸준히 재공연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초반부에 종종 등장하는, 두 팔을 V자 형태로 하늘 높이 드는 장면을 볼 때는 꽤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혹시 이번 페스티벌 '영웅본색'도 그 점에 끌려 이들의 작품을 프로그래밍한 건 아닐지 모르겠다.) 제도권 무용(?)이라 할 수 있는 한국무용, 발레의 동작만이 아니라 백업댄스, 더 나아가 일상적 몸짓까지 모든 움직임이 동작이 된다. 음악도 전방위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흐르다가도 비욘세의 '데자뷔', 박지윤의 '바래진 기억에' 등 팝, 대중가요가 섞인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우리 민요 '아리랑'이었다. 이 모든 것이 김보람의 춤이 무용을 처음 접하는 대중에게도 인기를 얻는 이유일 것이다.


이날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공연을 찾은 관객의 대다수는 무용과 친밀한 이들이었다. 전시를 보러왔다가 자연스럽게 춤을 접한 사람은 꽤 소수일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작품은 그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춤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매력이 충분했다. 무대가 어디든, 공간마저도 작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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