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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an 10. 2017

국립극장의 새 심장 ‘두근두근’

전속단체 공연연습장 ‘뜰아래 연습장’ 탐방기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를 위한 공연연습장이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국립극장 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가며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추적했다.


꽤 오랫동안 잊힌 공간이었다. 그간 자가용이나 셔틀버스를 타고 국립극장에 들어서면 어른 키의 두 배를 훌쩍 넘는 펜스가 조금이라도 그 선을 넘어올까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지만 이내 그것조차 극장 건물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2년 뒤, 오랫동안 세워져 있던 펜스가 걷히고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오름극장은 제 모습을 찾은 듯 환하게 빛이 났고, 1층 로비로 연결되는 거대한 계단도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됐다. 문화광장은 극장을 찾는 관객 모두를 품어줄 것 같은 너른 가슴을 지녔다. 그리고 한편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과 3개 전속단체의 이름을 내건 지상 건물이 새롭게 세워졌다.


멀리서 보기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니 아래로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보일 듯 숨은, 가린 듯 드러낸 이 공간의 정체는 뭘까. 지하 2층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내려가야만 할 것 같은 긴 계단, 햇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무수한 유리창, ‘나’를 중심으로 길고 둥그렇게 둘러싼 공간. 흰 토끼는 없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계단을 따라 (땅굴 아닌) 뜰아래로 향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습실(사진=전강인/국립극장)


제작극장, 새로운 동력을 얻다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를 위한 공연연습장이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개관했다. 국립극장 직원과 전속단체 단원을 대상으로 한 명칭 공모를 통해 ‘뜰아래 연습장’이라는 친근한 이름도 붙여졌다. 해오름·달오름·별오름·KB하늘극장, 그리고 산아래 연습실의 뒤를 잇는 막내의 탄생이다. 국립극장은 1973년 현재 위치한 남산으로 이전한 뒤 전속단체의 규모와 공연 횟수에 견주어 연습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렇기에 최근 개관한 ‘뜰아래 연습장’은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줄 마중물 같은 존재다. 신작을 제작하고 레퍼토리를 확립하는 제작극장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환경이자, 전속단체 단원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2012년 추진되어 이듬해부터 2년간 설계 기간을 거쳤고, 2015년 1월에 착공해 2016년 준공했다. 지상 1층·지하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총면적 3,968제곱미터(약 1,200평) 공간으로 조성됐다.


독특한 것은 공연연습장이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하에 공간을 조성했지만 연습장의 중앙부와 진입부는 외부에 개방형으로 노출되어 있는 성큰(sunken) 방식을 택했다. 채광과 접근성 문제를 보완해 지하층에 입체적으로 조성한 건축구조를 일컫는 ‘성큰 방식’은 보행자를 배려한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해 여러 건축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ECC와 고려대학교 하나스퀘어,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등이 있으며, 2017년 준공하는 세종문화회관 블랙박스 극장 역시 성큰 방식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뜰아래 연습장’의 경우 시야가 훤히 확보되는 중앙부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공기가 순환되며, 무엇보다 국립극장을 찾는 누구나 예술가의 연습실을 엿볼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뜰아래 연습장’에 들어갈 방법은 두 가지. 양쪽으로 연습실을 엿볼 수 있는 계단을 이용하거나,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거나. 세 전속단체의 이름이 새겨진 지상 건물(승강기탑)에는 화물용과 승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원하는 층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특히 화물용 엘리베이터 덕분에 제작 과정에 필요한 소품과 각종 장비를 편리하게 옮길 수 있게 됐다.



지하 2개 층은 각 전속단체의 장르별 특성에 맞게 안성맞춤으로 완성됐다. 무엇보다 층고가 6미터, 연습실의 높이는 4.2미터로 원활한 연습을 위한 공간을 확보했다. 외벽에는 드라이 에어리어(dry area)를 마련해 습기를 방지하고, 커튼월(curtain wall)을 통해 채광과 통풍이 가능하며, 지하 2층의 하부에는 피트(pit) 층을 두어 지표수의 유입을 막는 동시에 배수가 용이하도록 했다. 마치 악기에 케이스를 씌운 모양새처럼 연습실 전체를 둘러싼 여유 공간이 마련되어있어 극장 밖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음 방지 효과와 냉·난방 효과 역시 뛰어나다고 한다.


지하 1층으로 들어가면, 국립무용단과 국립창극단의 연습실·사무실·예술감독실, 그리고 샤워실과 탈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무용단 연습실은 외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해 운이 좋다면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연습 현장을 목격할 수도 있다. 2면은 전신 거울, 1면은 유리창으로 마감했고, 천장에는 리모컨 버튼 하나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전동식 롤스크린이 설치돼 다른 연습실보다 채광이 특히 뛰어나다. 바닥은 댄스플로어를 깔아 춤추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꾸몄다. 창극단은 창악부·기악부 구성을 고려해 두 개의 연습실이 마련됐다. 대형 연습실은 단원들의 대기실과 연결되어 있어 이동이 무엇보다 편리한 것이 특징. 중간 규모의 기악부 연습실 벽에는 악기 연습을 고려해 음향 환경에 적합한 타공보드를 부착했다.


한 층 아래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입주했다. 연습실·사무실·예술감독실·악기실·악보실 외에 교육실과 샤워실·탈의실·세탁실 등의 편의시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관현악단 연습실은 음향 반사판과 리브(rib)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최적의 음향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쏟았다. 이중구조로 된 천장에는 자작나무로 제작한 음향 반사판을 설치하고, 사면을 외벽과 30센티미터가량 이격시켜 흡음재를 삽입했다. 벽의 일부는 타공보드를 활용하고, 바닥은 특허 공법으로 시공해 음향효과를 극대화했다. 그 결과 잔향시간은 1.3초 정도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지하 1·2층에 걸쳐 총 12개의 개인연습실이 대형 연습실 사이사이에 위치해 있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내벽은 친환경적 소재인 편백나무로 마감하고 온돌을 장착한 황토 바닥을 깔았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연습장 ‘뜰아래 연습장’에는 기존에 분리되어 있던 전속단체의 사무실과 연습실이 같은 공간에 위치하게 됐다. 그야말로 제작의, 제작에 의한, 제작을 위한 프로세스가 구현된 것이다.


준공식 모습(사진=전강인/국립극장)


창작의 씨앗을 품은 공간

지난해 11월 25일 열린 공연연습장 ‘뜰아래 연습장’ 준공식에서 안호상 극장장은 “단원들이 공연연습장 좋다고 하는 소리가 가장 기분 좋게 들린다”라며, “‘뜰아래 연습장’은 제작극장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밝혔다. 안 극장장의 기념사에 이어 단상에 오른 손진책 연출은 “연습실은 예술 창작의 씨앗을 품고, 이를 발전시킬 소중한 공간” “공간이 뜨거워야 공연이 뜨거워지고, 극장의 공연이 뜨거워지면 우리나라 문화예술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보일 듯 숨은, 가린 듯 드러낸 ‘뜰아래’는 심연의 예술을 발견하기 위한 뜨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멋진 공간이 드디어 박동을 시작했다.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월간 ‘객석’, 서울문화재단을 거쳐 현재 「미르」 제작을 맡고 있다. 2015년 제12회 SPAF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국립극장 「미르」 2017년 1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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