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브제

청푸른 여인의 욕망

치마

by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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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대는 아낙들의 뒷말에 못 이긴 촌장은 옹녀에게 파랑봇짐 하나 안겨주며 마을을 떠나라 이르는데….


오냐 옹녀. 오냐 옹녀. 오냐 옹녀.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내 기필코 인생 역전하야 보란 듯이 살리라. 어드메서 나를 알아 사랑하실 우리 님이 삼삼하니 나타날세라. 오냐 옹녀 어서 가자. 신물 샘켜 어금니 깨물고 일나 저 뜨뜻한 남녘으로 내려가자. 산전에 수전 다 겪은 몸. 풍상이든 뇌우 치든 살아남아 내 한 서린 사연을 후세까지 전할란다. 오냐 옹녀. 오냐 옹녀. 오냐 옹녀.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한탄을 마치고 당차게 새로운 시작을 고하는 옹녀. 삼베 상복 아랫자락 당겨 휘청하고 한 바퀴 돌자 푸른색 치마가 드러납니다. 빠알간 욕망과 불꽃같은 열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라도 하듯 물과 하늘의 창창한 색을 품은 치마폭.


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는 봄을 나타내는 청색은 벽사기복(辟邪祈福,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빎)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네 삶 속에서 생명과 젊음?희망 등을 상징하곤 하죠. 유실된 판소리 속 옹녀는 현대 창극에서 하얀 저고리와 청색 치마를 입고 등장해 자신에게 씌워진 편견을 걷어냅니다. 선비의 청렴결백에 견주는 쾌청한 빛깔이 삶을 개척하는 당찬 여인에게 어찌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글 김태희 | 사진 박진호(studio BoB)


※국립극장 「미르」 2017년 4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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