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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n 22. 2017

치맛자락에 숨겨진 비밀

의상실에선 무슨 일이?

‘킁킁’ 세탁소의 향기와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가득한 국립극장 의상실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익숙할 법한 세탁소 냄새가 풍깁니다. 통이 돌아가고 물과 옷감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규칙적으로 울리는 박음질 소리, ‘치익!’ 하고 뜨거운 김을 내뿜는 다리미의 외침이 화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냄새와 소리 뒤로는 색색의 의상이 줄지어 걸려 있습니다. 어딘지 예측이 되시나요? 해오름극장 백스테이지 끝에 위치한 국립극장 의상실입니다.


‘의상은 배우의 두 번째 피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대 위 배우·무용수·연주자를 빛나게 하기 위해선 각종 무대 세트와 연출뿐 아니라 ‘의상’도 아주 중요합니다. 잘빠진 자태는 졸고 있던 관객의 시선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일상의 흔적을 벗고 환상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의상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의상실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어느 때보다 공연이 많은 오뉴월, 바쁘게 돌아가는 극장만큼 의상실도 쉴 틈이 없어 보입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찾아갔습니다.



한 벌의 의상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국립극장이 ‘제작극장’이라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자체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전속단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대 제작에 관한 시설을 갖춘 ‘제작극장’의 기능을 바로 이곳, 의상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작된 공연의상의 관리·감독뿐 아니라 실제 공연을 진행하고, 레퍼토리 의상을 외부에 대여하며, 공연용품 목록과 관련 정보를 전산화하는 작업까지. 의상실의 다양한 업무에 관해 지금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프로덕션은 무대스태프 회의로부터 시작됩니다. 각 분야의 제작진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데 회의를 통해 연출 의도와 각종 디자인, 장면 전환 등을 파악합니다. 이렇게 전반적인 부분을 확인한 후에는 대본 분석을 통해 캐릭터를 정립하고 의상에 관련한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합니다. 새 의상을 몇 벌 제작해야 할지, 퀵 체인지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전체를 머릿속에 그리며 작품을 훑는 과정이죠. 이후 제작부터 세탁·수선·공연 진행·이관까지 의상과 관련한 모든 일정을 짜고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디자이너와 밀착해 의견을 나누며 원단의 종류는 물론, 극장이 보유한 의상 중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다각도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단기적으로 공연을 올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의 레퍼토리를 축적한다는 측면에서 의상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상이 얼추 완성되면 드레스리허설을 통해 본격적으로 점검에 들어갑니다. 직접 입어보고 움직여보면서 불편함이 있다면 디자인을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배우나 무용수의 몸에 맞게 수선할 부분이 있는지 체크합니다. 올해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재공연의 경우 장승 의상을 새롭게 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대방장승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뒤쪽 자락이 3미터가량 길게 펼쳐지도록 구상했지만, 드레스리허설 과정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연출가·디자이너와의 협의를 거쳐 수선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의 막이 오르면 더욱 분주해집니다. 배우와 무용수가 좋은 의상을 입고,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이들을 위해 공연 기간에도 세탁·수선 등의 작업이 계속해서 진행됩니다. 땀에 푹 젖은 셔츠를 세탁하기 위해 저녁 공연이 끝난 뒤 밤새 건조기를 돌리기도 하고, 전통의상을 착용하는 경우에는 공연 전 수십 벌의 의상을 다림질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랍니다. 화려한 의상으로 주목받은 ‘향연’은 의상의 품이 워낙 크고, 종류도 많아 무척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고단함도 금세 잊은 것 같네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나면 수거한 의상은 세탁과 수선을 거쳐 국립극장 공연용품으로 이관됩니다. 국립극장의 레퍼토리를 집적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의상을 관련 자료와 함께 들여와 검수를 진행합니다. 공연에 사용된 전체 의상의 숫자와 단가, 배역, 제작연도 등 의상 한 벌에 입혀진 모든 정보가 전산화되어 작고 투명한 바코드에 저장됩니다. 단장을 마치고 바코드를 부착한 의상은 의상보관실로 옮겨져 제자리에 차곡차곡 정리됩니다.



이렇게 자리를 배정받은 의상은 재공연이 결정되면 언제든 백스테이지로 내려올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들어갑니다. 전통의상의 경우 실크와 같은 천연섬유로 만들어진 것이 다수이기 때문에 곰팡이나 병충해가 생기지 않도록 주기적인 청소와 환기는 물론, 항온·항습 시설을 완비해 꼼꼼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매월 최소 1회 이상 공연을 진행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단복은 언제든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보관하고 있답니다.


약 1만 벌의 의상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극장 의상실은 외부 예술단체를 위한 대여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의상 전문가가 아닌 기획자나 조연출가가 의상을 대여하기 위해 자문을 요청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공연의 콘셉트에 적절한 의상을 추천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진행된 공연용품 전산화 작업은 차후 공연용품 대여 서비스와 연계해 웹상에서 누구나 편리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공연 외에도 의상실에선 전속단체 단원들이 편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립극장 공연의 특성에 딱 맞는 원단과 각종 부자재를 구비하고 있어 전통복식에 관한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바로 제작과 수선이 가능하지요. 토시·무릎패드·속치마·속바지·두건·백선·혁대·패치코트·한삼 등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하기도 합니다. 연습 과정에서 숙지가 필요한 의상디자인이 있는 경우 연습 의상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때 실제 의상과 가장 유사한 소재를 찾아 비슷한 느낌과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디테일까지 신경 쓰지요.


다림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용수 체형의 결점을 숨길 수도 있고, 춤사위의 느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같은 천이라도 풀을 먹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회전의 형태가 달라지지요. 모든 예술가가 의상에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서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의상실은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글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서울문화재단을 거쳐 「미르」 제작을 맡고 있다. 2015년 제12회 SPAF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7년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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