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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를 따라 걷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축제극장

by 김태희
유럽에서 극장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 나라의 예술을 온전히 체득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니까.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뮤지컬을, 유럽에선 오페라를 봐야 한다는 배낭여행족의 불문율(!)은 사실 공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극장에 간다는 것, 그곳의 극장문화를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색다르고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한 번쯤 감상했을 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잘츠부르크의 푸른 초원 위에서 마리아 선생님이 두 팔 벌려 빙글빙글 돌던 장면을 기억하는지. 리듬만 들어도 함께 흥얼거리게 되는 주옥 같은 명곡을 여럿 남긴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루면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인 잘츠부르크 곳곳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면을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미라벨 정원


마리아와 트랩가 아이들이 신나게 '도레미 송'을 불렀던 미라벨 정원을 기점으로 잘츠부르크 여행을 시작했다. 시원하게 솟아 오르는 분수대를 보고 있자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다. 마음속으로 도.레.미. 흥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보니 색색의 예쁜 꽃들이 가득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마치 이곳에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영화의 추억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독특한 간판이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로 접어들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 상점과 프랜차이즈 식당 사이사이에 자리한 공예품 상점이라든지 전통 의상과 쿠겔을 파는 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이 거리의 끝에선 노오란 외벽이 인상적인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모차르트의 생가. 사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데, 가게 이름이 '모차르트'인가 하면, 거리에 그의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모차르트 얼굴이 그려진 포장지로 장식된 초콜릿도 발에 치일 만큼(!) 많다. 하여튼 이 생가는 현재 '모차르트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다.


모차르트 축제극장(Haus für Mozart - Salzburger Festspiele)


잘츠부르크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호엔잘츠부르크 요새를 향해 걸어올라가다 보면, 그의 이름을 단 건물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좌우로 꽤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 모차르트 축제극장(Haus für Mozart - Salzburger Festspiele)이다. 원어로 '모차르트 축제극장'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동어로 사용되곤 하는데, 매년 여름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바로 모차르트 축제극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 극장은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에 의해 196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진다. 그 외 모차르트 축제극장의 특별한 점이라면 오직 잘츠부르크 페스티벌(7월 중순~8월 말)과 부활절 축제(5월)에만 관객에게 오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축제기간을 제하고 유일하게 관객들이 이 극장을 구경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에는 늘 참여자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극장의 내부가 궁금해서 투어에 합류했다. 거대한 정문이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을 만큼만 열리더니,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투어는 독일어 설명 후에 영어로 다시 한 번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벽화로 장식된 극장 로비


극장의 겉모습을 보고 얼핏 예측했던 대로 내부는 정말정말 넓었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로비 대용의 공간은 벽화로 꾸며져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극장의 이미지와 매우 달랐다. 샹들리에 대신 작은 조명이 자리했고, 화려한 장식은 걷어내고 마치 동굴처럼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여닫는 문 없이 반원기둥 모양으로 벽을 뚫어놓은 것도 이색적인 느낌을 더했다.


대극장 무대, 축제가 끝난 후 무대를 점검하고 있다.
내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무대 디자인/연출


모차르트 축제극장에는 총 3개의 극장이 있다. 대극장, 소극장, 그리고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 2400여 석을 갖춘 대극장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주요 오페라와 콘서트가 공연되는 극장으로 현대식 극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내가 갔던 때에는 페스티벌이 모두 끝난 10월이어서 극장 무대를 정비함과 동시에 내년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축제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는지… 그해 그해 공연과 축제를 준비하는 우리식 예술행정과는 너무도 다르는 걸 무대에서부터 엿볼 수 있었다.



독특한 형태의 길쭉한 소극장은 대주교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고 한다. 형태를 그대로 살린 것이 이곳만의 특징이다. 남은 하나의 극장은 '펠젠라이트슐레'로, 극장 뒤편을 받치고 있는 묀히스베르크산의 암벽을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마지막 부분에서 트랩가 가족이 음악회에 참여해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본래 추기경의 여름 승마학교였다고 하는데, 60여 개가 넘는 아치형 구멍을 뚫어서 지금과 같은 극장 형태를 갖게 되었다. 영화에서 얼핏 보았던 수많은 아치들이 무대의 배경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투어를 마치고 잘츠부르크의 전경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곡목은 '에델바이스'. 노래를 부른 덕분에 추격을 따돌리곤,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한 영화 속 트랩가 식구들이 떠올랐다. '에델바이스'의 다소 애잔한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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