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브제

고아한 초상

연꽃

by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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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새 물에 들며 푸른 비단 수면을 가르니 / 잔잔한 물결 일렁이며 연잎을 감싸안네 / 선심이 본래 스스로 맑은 것을 알고져 / 희디흰 가을 연꽃이 찬 물결 위로 솟네

- 이규보 ‘연못’


깊이를 알 수 없는 창창한 수면 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꽃. 스스로 빛을 내는 듯 신비한 빛깔을 지닌 연꽃이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생김새가 살지고 화려하다 하여 모란을 ‘화중왕(花中王)’이라 한다면, 연꽃은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강인함을 지닌 서민의 꽃입니다. 은은하고 청초한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요.


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 그 지극한 효심을 물속 깊은 곳에 사는 용왕님도 알았던 걸까요. 죽음을 각오하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선 그녀가 영롱한 한 송이의 연꽃에 실려 지상 세계로 돌아옵니다. 이를 발견한 선인들은 “이 꽃 이름은 효녀화”라며 임금에게 진상하고, 덕분에 아버지와 극적으로 상봉하게 됩니다.


연꽃은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도에선 ‘선(善)’을, 불교에선 세속의 풍진에 물들지 않은 청정을 의미하지요. 유교에선 진흙 속에도 꽃을 피운다 하여 순결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잎은 물을 튕겨내고, 씨앗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어 신비함을 더하는 꽃, 심청을 품고 돌아온 바다 위 연꽃이야말로 진정한 ‘효녀화’라 할 수 있지요.


글 김태희 | 사진 전강인


※국립극장 「미르」 2018년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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