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태태 Dec 16. 2018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을 읽고

여행 중 독서란...인생 속 최고의 특혜


#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적기 시작한 시점도. 그때부터였겠지. 노란색 에세이를 펴낸 작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솔직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에세이. 노란 표지와는 다르게 온갖 감정이 섞여 표지만큼은 밝지 않았던 글이 담겼던 책을 읽은 뒤였다. 그 책을 써낸 사람이 이석원이라는 걸 알았고, 그가 내가 좋아했던 언니네 이발관 보컬이었다는 건 오히려 한참 뒤에 알았다.(지금은 아쉽게도 언니네 이발관이 공식 해체되었다)


#

이석원 블로그를 어느새 힐끗힐끗 염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큰 공감을, 때론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공개 일기'라는 블로그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 가끔 글을 올리곤 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고 몇몇 분들은 여전히 안부를 묻고 지내기도 한다.


#

이 책을 오래 기다렸다. 신간이어서가 아닌, 이석원 책이라서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책을 산 뒤에 여행이 시작되기 전까지 며칠 아꼈다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 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책을 기다린 오랜 팬으로서 나에게도 특별한 순간을 이 책과 함께하고 싶었다. 몇 꼭지를 읽었다. 역시는 역시구나. 이석원은 이석원이구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한 연애 서사를 긴 호흡으로 풀어낸 에세이라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보통의 존재>와 유사한 구성으로 풀어냈지만, 그가 작가로서 때론 한 사람으로서 보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은 조금 더 숙성되었고 그 시간만큼 나한테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그 이유인즉슨, 이번 여행은 21살 때 처음 떠났던 태국 뽕에 7년 넘게 취해 있던 나를 다시 '알 수 없는 순수함과 순박함'으로 돌려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땐 참 순수했는데'라는 상태로 (무척 어렵지만) 다시 돌려낼 수는 없어도 조금이나마 여행과 삶에 대한 애정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이런 별거 아닌 여행 동기의 동반자로서 이석원 책과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사운드 트랙을 골랐다. 그리고 이석원과 사운드 트랙은 여행의 농도를 짙게 해 주었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여행지 속 작은 감동으로 순식간에 나를 몰아넣었다.


5시간의 비행으로 갑자기 겨울에서 한여름이 된 나를 구해준 에어콘을 틀어줬던 카페

#
여행 속 책과 음악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의 순간을 정. 확. 히 기억해줄 매개체가 된다. 방콕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첫 차를 타고 나와 급작스러운 더위에 헉헉대면서 겨우 찾아낸 에어컨이 되는 몇 안 되는 카오산 로드 카페에서, 바닐라 라테와 시나몬 롤을 먹으며 펼친 이 책. 밖은 한 밤 중 열기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의 문장 안에선 한없이 센치해져만 갔다.(물론 졸림도 한 몫했다).


#

'나는 왜 떠나지 못할까.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내겐 어째서 늘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했던가.
여행은 나의 나약함과 지독한 의존성의 상징과도 같은,
하여간 내 모든 병신 같음이 집약된 행위였다.'

'여행'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

여행 중간중간 펼쳤던 페이지에선, 한 없이 산만했던 여행지의 열기에 찬 물을 끼얹는 문장들이 많았다. 하루는 지친 간을 쉬어주고자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들어갔다. 군중 속의 고독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글이 너무 가슴을 파해쳐서 이건 도저히 질길 수 없었던 고독이었다).


이런 글들이 순간 순간 심장을 폭행하곤 한다


#
때로는 이석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얼마나 예민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삶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면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전자가 맞는지 후자가 맞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지만,

최대한 감정 소모를 줄이면서 일상을 관찰하는 에세이를 가끔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자기 반영 글이라는 건 아주 건설적이고 이상적이지 않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토해내고 소모하면서 써내려 가는 글이다.


그런데, 때론 이런 글들이 쓰는 사람을 감정의 골로 밀어 넣기도,

오해를 증폭시키고 자신을 괴롭게 만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조금 현명하게 글을 쓰는 법도 익히고 싶다.

이석원 글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 본다.


#
두 번째 방문한 태국은 21살 때와는 무척 다른 감흥을 주었지만,

여전히 행복과 쾌락의 극단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

그리고 그 속에서 읽었던 이석원의 문장은 여행의 콘트라스트를 높여주었고,

강렬한 햇빛에 그을려진 그의 책은 오랜 시간 서재 한 켠을 지킬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을 때 듣기 좋은 음악추천!(유튜브 채널/리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