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될 때는 언제일까? 그 지점은 독자가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을 탐색하는 데 있다. 박웅현이 반한 카프카가 한 말을 빌리자면, 책은 무릇 우리의 도끼가 되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카프카, ‘변신’
최근에 읽은 <돈의 역사>가 나에게 딱 그랬다. 그렇다 난 경제도 잘 모르고 역사도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두 번 세 번 탐독했다. 매 챕터 경제사건은 지금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와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 되었던 이유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 활동을 하며 살아가면서 경제를 모르고 역사를 모른다고 쉽게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방식으로 또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돈의 역사>로 경제적 사건 뼈대를 잡았으니, 이를 확장시키고 싶었다. 책에서 다룬 경제 사건을 반영한 영화와 다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1 '허영이 만들어 낸 행복의 순간'
<종이 달> - 1990년 일본 버블 경제 붕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일본 대공황 이야기다. 1990년대에 일어난 일이니 최근이고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렇게 찾아본 영화가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종이 달>이다. 영화는 일본 버블경제가 붕괴된 직후인 1995년을 배경으로 한다. 극 중 주인공인 은행원 리카가 은행 돈을 횡령하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영화가 이어진다.
당시 버블 경제가 붕괴되어 경제 활동이 위축되자, 은행은 집 금고에 돈을 놔둔 사람들의 돈을 은행 금고로 다시 넣기 위해 여러 가지 예적금 상품을 홍보한다. 주인공 리카도 우량 고객 집을 직접 방문하면서 돈을 받아 온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은 리카가 횡령한 돈을 메꿔 보려고 1년 이자 3%대라는 프리미엄 고배당 저축 상품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현재 예적금 이자가 2% 대면 높다고 보는데, 그 당시 일본 경제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불어, 같은 은행에서 오래 근무한 선임에게 젊은 직원이 버블 때 돈 많이 벌어놔서 좋겠다며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이 어땠는지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리카처럼 직접 은행 수금 일을 하면서 당시에 돈을 횡령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극 중 리카의 수상한 행동을 의심하는 스미 유리코는 자신이 일하는 은행 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난 내가 다루는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할 뿐이에요."
<종이 달>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였다. 더불어, 조금은 반성하게 된 부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지만, 정작 내 돈이 어디로 와서 어떻게 흘러가는지에는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종이 달>로 일본의 버블 붕괴가 가져온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 일어나는 평범한 여자의 범죄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다음 영화로 미국의 버블이 무너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 2개를 봤다.
#2 '2008년 월스트리트, 전 세계 금융위기 하루 전.'
<마진 콜> -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2008년 미국을 강타한 미국 금융 위기. 그 사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슬아슬 지탱해 오던 미국 주택 시장을 꾸준히 지켜본 월 스트르트 금융사다. 영화 <마진 콜>에서는 당시 금융 위기가 온다는 걸 알아차린 금융사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준다. 960억 연봉을 벌던 회장은 임원들을 소집해, 자사가 갖고 있는 '쓰레기 주식'을 24시간 안에 몽땅 팔아치우는 계획을 세운다.
'1등이 되거나 똑똑하게 사기를 칠 것'을 모토로 삼고 금융사를 이끌었던 회장은 '폭탄 돌리기'의 방아쇠를 당기며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사겠다는 사람(willing buyers)에게 공정한 시장 가격(fair market price)에 팔겠다는 것뿐이다.” 이 살벌한 대사에서 당시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월스트리트에 얼마나 치명적이었고, 금융사의 몰락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눈치챘고, 빠르게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록 그들로 인해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지만...
#3 2005년, 모두를 속인 채 돈 잔치를 벌인 은행들.
그리고 이를 정확히 꿰뚫고 월스트리트를 물 먹인 4명의 괴짜 천재들.
<빅쇼트> -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영화 <마진콜>이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 24시간을 다뤘다면, 영화 <빅쇼트>는 이 위기를 3년 먼저 알아챈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나라가 망한다'에 배팅을 했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뒀다. 금융 위기는 누군가에겐 위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 돈을 잃는 제로섬 게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빅쇼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보통 투자나 재테크를 '감' 혹은 '운'에 의지해 성공한 모험담이 많이 들린다. 그러나,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마이클 버리는 철저한 '공부'로 부동산 시장 붕괴를 예측해, 사장을 설득해 주가 하락에 배팅을 하게 된다. 그는 월가 투자 은행들이 체결한 모든 부동산 대출 서류를 꼼꼼하게 읽어본다. 오랜 기간의 데이터를 습득한다. 그리고 그는 판단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반드시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그가 성공한 이유야 말로 우리가 '돈의 기록. 즉, 돈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투자를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관련 데이터와 돈이 흘러간 흔적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자본금을 투자하고 있는가?
<빅쇼트>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방향책을 제시한다. 개인이 투자를 하던, 시스템이 되던 혹은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투자를 하던지 꼭 '투자'만이 아닌 자신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준다. 어떤 방법이던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잘 살아남는 게 필요하고, 돈을 공부해서 꼭 개개인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세 편의 영화가 일본과 미국에서 일어난 경제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면, 이제 조금 자세히 현대 자본주의 세계로 들어다 보자. 넷플릭스에는 정말 다양한 다큐들이 생각보다 꽤 많은데, 그중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넷플릭스 다큐 두 편을 추천한다.
위에 영화들이 경제 사건을 다뤘다면, 두 다큐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철저하게 고발한다. 단순히 자본주의를 무작정 비난하려는 시선은 아니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될 것.
#4 넷플릭스 오리지널 <검은돈 Dirty Money>
'탐욕에 대한 6가지 이야기'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검은돈'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한다. 국문 이름은 검은돈이지만 영어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데, 이름은 'Dirty Money'다. 자본주의에 가려진 기업들의 윤리적 문제부터,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는지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시즌1
EP01. 폭스바겐의 디젤 사태를 다룬 '그린 디젤의 배신',
EP02. 온라인 대출업으로 거부가 된 레이싱 드라이버 스콧 터커 '월급 도둑',
EP03. 신약 개발 대신 인수 합병에 골몰한 거대 제약회사 밸리언트 '환저를 팝니다',
EP04. 민간인 살해까지 일삼는 멕시코 마약 밀매 조직 '카르텔 은행',
EP05. 캐나다 퀘벡주에서 발생한 천만 달러 규모의 메이플 시럽 절도사건 '메이플 시럽은 누가 훔쳤을까',
EP06. 도널드 트럼프, 그는 위대한 비즈니스 맨일까. 아니면 거짓투성이 사기꾼일까 '위대한 거짓말쟁이'.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적 기업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뉴스에서 보던 사건 그 이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첫 화인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기업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에 대해 나오는데,
겉으로만 알던 사실을 심층적으로 다뤄서 기업의 윤리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5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정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it's not about POLITICS. it's about SURVIVAL.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누구를 위한 시장인가.
불평등 사회에 대한 로버트 라이시의 경고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99%를 향한 절박한 호소다.
이제 더는 침묵하지 말라.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한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가 진단하는 미국 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 자본주의가 왜 악순환에 있는지 어떻게 중산층이 이겨낼지에 대해 경제학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더불어, 시민들이 낸 세금을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친다. (이 보조금은 교육부 전체의 운영 자금보다 높은 금액이다). 그의 권력 재분배에 대한 경제학 강의를 듣다 보면 자본주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돈 공부'는 단지 예측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발표 하나로 섣불리 예측을 해서도 안된다. 경제 분야만큼 예측이 힘든 분야도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건 예측을 해서 어디에 투자를 하는 게 아니다. 과거의 경제적 사건 데이터와 그 사건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지금까지 그 그림자가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아는 게 우선이다. 과거를 읽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를 선명하게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
경제 공부는 단순히 지금 주식이나 부동산이 없다고 해서 소흘히해서도 안된다. 조금이라도 주식에 투자해보고 싶다면, 무작정 뉴스를 뒤적거리며 이 종목은 괜찮겠지, 이 펀드는 은행이 권해줬으니까 믿어도 되겠지. 이렇게 짧은 공부로 투자하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돈을 열심히 벌려고 노력하는 만큼, 돈을 키울 수 있는 재테크를 위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돈의 역사>를 보면서 국내 사건뿐만 아니라 해외의 경제적 사건이 한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걸 보고 살짝 소름 끼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반성도 했다. 그렇게 나도 나름의 공부를 시작했다. 금융 사건을 반영한 영화를 보다 보니, 책 속의 경제 차트가 정말 '텍스트' 그 이상의 영향을 그 시대에 끼쳤구나를 몸소 느꼈다.
2019년, 자본주의 세계에 살아가는 이상, 이제는 피할 수 없다.
다 같이 시작하자 '돈 공부'. 우리 각자 이 세상에서 잘 살아남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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