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태피디
작가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쓴다. 그중에 가장 존경스럽고 신비로운 건 당연히 '소설가'다. 하나의 세계를 구축시키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소설가.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오랜 기간 창작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아마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오래 창작을 하면서 긴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 또 다른 그레이드다. 소설가로 본다면 여러 작가가 떠오른다. 그중에 일본 국내외로 사랑받는 작가는 당연 '하루키'가 있겠다. 그는 30년 넘게 소설을 집필하면서 여전히 유명세를 누린다. 그의 작품은 현재 5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매우 부러운 실적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의 노하우를 따라 하고 싶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는 여러 챕터가 나오지만, 하루키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자세히 알려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장편소설 쓰기'챕터는 꼭꼭 숨겨두고 혼자 읽고 싶은 조언으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며 그의 글쓰기 태도부터 작업 습관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롱런하는 작가는 그저 운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하루키가 들려주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글쓰기 비결을 살짝 공개한다.
그것은 내게는 '통상 영업 행위 = Business As Usual'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혹은 그런 정해진 패턴에 나 자신을 몰아넣고 생활과 일의 사이클을 확정했을 때에야 비로소 장편소설 쓰기가 가능해진다-라는 면이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한 장기전이기 때문에 일단 나 자신의 태세를 단단히 정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도중에 힘에 부쳐 나가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장편소설을 쓸 경우, 나는 우선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책상 위에 있는 것을 깨끗이 치웁니다. '소설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태세를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장편 소설 집필은 지독한 장기 레이스다. 해본 적도 없지만 (시도조차 두렵다), 이 작업이 얼마나 고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작업을 견딜만한 일상생활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사이클이 확정했을 때에야 비로소 장편 소설 쓰기가 가능하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자신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쉽게 무너진다. 습관 형성도 마찬가지다. 습관을 들이려면 의지보다는 '시스템'을 먼저 설계하는 게 우선이다. 내 몸이 특정 시간에 자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 Mac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석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건 기초 체력을 유지하면서도 지속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그는 한 번에 절대 몰아 쓰거나 덜 쓰지 않는다. 매일 꾸준히 원고지 20매를 쓴다. 이는 장기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난 부분이다. 하루키가 인용한 소설가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다. 하루키도 마찬가지.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한다. 이 루틴을 매일을 반복한다. 매년 하루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생각했다. 아니 이 아저씨는 어떻게 글을 이렇게 많이 쓰는 거야. 이제야 그 비결을 (혹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알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즉 중요한 것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라고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글쓰기 대가들은 얼마나 고쳐 쓸까? 글쓰기에서 가장 번거로운 부분은 수정, 즉 '퇴고'의 과정이다. 하루키 정도 되면 술술 글이 써지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문장이 얼마든 좋아질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다. 그뿐만이랴, 문장을 뜯어고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만약 자신과 맞지 않는 편집자와 일해도, 그가 지적한 부분은 모두 고쳤다고 한다.(지적한 부분과 고친 부분이 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편집자는 하루키에게 유용한 편집자라고 회상한다.
몇 번이나 퇴고를 해야 하느냐,라고 물어도 정확한 횟수까지는 잘 모릅니다. 원고 단계에서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쳤고, 출판사에 건너가 교정지가 된 다음에도 상대가 지겨워할 만큼 몇 번씩 교정지를 내달라고 합니다. 교정지를 새까맣게 해서 돌려주고, 그렇게 해서 재차 보내준 교정지를 다시 새까맣게 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건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나에게는 그리 고통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한 문장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여운을 확인하고 말의 순서를 바꾸고 세세한 표현을 변경하는 등의 '망치질'을 나는 태생적으로 좋아합니다. 교정지가 새까매지고 책상에 늘어놓은 열 자루 정도의 HB 연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낍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일이 진짜로 재미있어요. 하염없이 하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가장 놀랐던 부분이다. 망치질을 태생적으로 좋아한다니. 물론 장편 소설이라는 특수성이 있겠다. 하지만, 그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 종류의 글이던 마찬가지일 듯하다. 여러 종류의 크리에이티브를 제작해 왔다. 많은 제작자들과 일을 했지만, 대부분 처음에 총력을 기울이고 수정은 조금조금씩 하길 원한다. 이미 만든 제작물을 또 고쳐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루키는 수정하는 작업을 고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제작물을 위해 '망치질'을 한다. 망치질이란 무릇 견고 해지는 과정이다. 보다 심도 있게 만드는 행위. 하루키는 이런 망치질을 너무나 사랑한다.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입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력전'을 온 힘을 다해 치른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소설 쓰기에 임한다. 정작 그는 별거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모든 작업이 '별 거'라는 걸 안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부터 집필 과정 그리고 마지막 퇴고까지. 매번 그는 장편 소설을 쓰면서 지독한 장기전을 치른다. 하루키는 그 장기전에서 누구보다 잘 살아남고 즐기는 법까지 이미 체화된 듯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거듭 자신의 생각을 사적인 것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 비결을 정-말 체득하고 싶다.
참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