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무척 더웠다. 더운 날에는 어딜 움직이지 않는다. 나에게 여름이란 무척 고독한 계절. 어디를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쳐진다. 그런 날에는 서점으로 향한다. 그날도 그랬다. 너무나 덥고 습해서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 저녁,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지점에 서있었던 나는 서점을 택했다. 주말을 카페에서 보낼 책을 고르러 갔다. 여러 책중에 무척 시원해 보이는 소설집이 보였다.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었고 작가는 김애란이었다. 김애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작가다.
상대적으로 소설은 덜 읽는 편이라, 한 번도 그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은 왠지 읽어보고 싶었다. 책 표지에 끌려서일까. 덥석 그 책을 들고 주말 내내 읽었다. 그 주말의 토요일과 일요일은 무척 서늘했다. 단편집이라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때로는 읽다가 눈물이 고이기도, 가슴이 내려앉기도 했다. 과한 감정을 싣지 않지만, 서늘한 감정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야. 그 여름 이후로 그녀의 팬이 되었다. 어느새 한 해가 지나 여름이 찾아왔고, 김애란도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에세이다. 소설가의 에세이는 어떨까. 에세이를 잘 쓰는 소설가들이 꽤나 많다. 하루키가 그렇고, 김중혁과 김연수가 그렇다. 특히 김중혁 작가의 농담을 담은 에세이를 무척 좋아한다. 이번에 그가 나온 <대화의 희열> 프로그램을 보는 데, 소설 쓰는 AI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부분이 기억게 남는다. 왜냐하면 나에게 김중혁이 그런 존재니까.
(AI가 소설을 쓴다면) 동시대의 같은 소설가와 살아갈 때의 재미를 못 느낄 것 같아요. 작가의 굴곡을 옆에서 보면서 다음에 쟤가 어떤 걸 쓸려나 기대 같은 것들이죠.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를 반복하는 동시대의 작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대화의 희열> / 김중혁 작가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김중혁의 말이 떠올랐다.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신간을 받는 기쁨이 이렇게 크구나.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작가가 예전부터 써온 산문을 묶어서 낸 책이다. 그 속에는 그 시절 작가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첫 당선이 됐을 때의 에피소드가 재밌었는데. 이야기에는 그녀의 청춘 시절뿐만이 아니라, 모든 청춘들이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감정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 자기 일을 찾아가고 성취를 이뤘을 때. 이토록 소중한 순간이 어디에 있을까. 그때 그들은 넘치는 체력 말고는 가진 게 없다. 이런 그들이 무언가를 처음 달성했을 때, 주위에서 품어져 오는 정겨움. 나도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나만큼 기뻐하고 나보다 더 좋아해 준 그들. 지금 나는 누구에게 그런 존재로 남아있을까.
에세이를 좋아한다. 아니, 에세이를 너무 사랑한다. 에세이를 읽는 마음이란 무릇 한 사람의 생각에 푹 젖고 싶은 마음이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가볍다. 어떤 글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지만, 또 다른 글은 온몸으로 통과해 마음이 비워지기도 한다. 김애란의 글이 나에겐 후자다. 그녀의 글은 내 몸을 통과해 무거운 마음을 씻겨낸다. 그러고 나면 내 마음이 무척 가벼워진다. 그 안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너무나 더운 여름 처음 읽었던 김애란의 글. 작년에도 올해도 그녀의 글을 읽고 나니 서늘함이 맴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은 아닐 테다. 아껴 읽고 싶지만 조금씩 들춰보고 있다. 아, 이번 여름도 김애란이다.
참고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