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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태태 Aug 09. 2019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운이 좋은 사람'

운이 좋은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나는 운이 좋아"

-<데드풀 2>의 도미노-



영화 데드풀 2에는 슈퍼파워가 없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힘이 엄청 세거나 공간 이동을 하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겐 '운(運)'이 있다. 데드풀은 도미노에게 슈퍼 파워가 아닌 그녀의 능력을 무시했다. 운이 무슨 슈퍼 파워냐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도미노의 능력은 그 어느 히어로보다 막강했다. 차가 뒤집혀도 그녀를 피해 가고 온갖 공격을 운이 좋게 피해냈다. 게다가 도미노의 작은 공격에 적수는 금방 떨어져 나갔다.


운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뭐길래 우리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운을 얘기하는 걸까? 이에 대해 귀여우면서 통찰력 있는 대답을 내놓은 변호사가 있다. <운을 읽는 변호사>를 집필한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가 들려주는 '운'이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운이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


<운을 읽는 변호사>를 집필한 니시나카 쓰토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Q. 운이란 무엇인가요?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종교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신비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운이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해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점점 살수록 운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고 한 사람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로또를 맞고 그렇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살면서 행운이 찾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다.


@마이크임팩트


"나의 단점, 병, 힘든 것, 내 영혼을 해치는 비바람들을
삶의 디폴트로 놓으십시오"

-박웅현-


그래서 박웅현은 "불행을 삶에 디폴트로 놓으싶시오"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들이 더욱 많이 일어나는 요즘이다. 때로는 내가 바랬던 게 너무 많아서 그랬을까 자책을 한다. 내 영혼을 해치는 비바람들이 수없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런 불행을 만날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크게 욕심내지 않고도 나의 일상을 구축해주는 것들. 가령 저녁에 볼 수 있는 책, 주 5일 8시간씩 할 수 있는 일, 매일 아침에 하는 수영, 서스름 없이 만나는 친구들까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감사하게도 내 곁을 지켜준다. 함께 살아감에 다시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으니 더욱 고마울 뿐이다.



당신은 지금 '덕'을 쌓고 있는가?



Q.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차이는 '덕'을 쌓고 있는가 여부지요. 덕이란 가능한 다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겁니다.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작은 상황도 분쟁으로 만들고 빈번하게 소송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겨도 계속 비슷한 분쟁이 반복될 뿐이에요. 불운을 끊어 내지 못하는 거죠.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덕'에 대해 듣는 순간 아차 했다. 내가 덕을 얼마나 쌓고 있었지? 덕이란 게 어렵지만 간단히 풀어보자면 '선의'다. 우리 회사에서는 선의를 강조한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선의'를 베푸는 것. 처음에 들었을 때 아리송했지만 이만큼 안티프레질한 전략도 없다. 비즈니스나 인간관계 그리고 개인 삶의 중심에는 선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은혜를 갚는 것을 항상 생각한다. 우리는 외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가끔 놓치곤 한다. 매일매일 일에 바쁘다 보니 종종 잊곤 한다.


매일 글 쓰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내가 잘하는) 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 개인의 발전은 물론 동시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 속 느슨한 유대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하루에 작은 행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글을 쓴다. (요 며칠 글이 밀렸습니다. 반성 반성ㅜㅜ)



운을 좀먹는 오만함


Q. 운도 덧셈 뺄셈으로 계산된 각자의 장부가 있습니까?

하늘의 장부라고 하죠.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라도 갚지 않으면 운이 나빠져요. 도덕적 부채가 쌓이면 금전적 부채보다 운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내놓지 않으면 오만함이 생기고, 오만함은 운을 좀먹는 곰팡이와 같지요. 그래서 받은 은혜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툼이 생깁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는 운의 선순환에 대해 얘기했다. 좋은 운을 얻었으면, 다시금 운을 타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즉, 자신이 받은 감사함을 돌려주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몇 기업가들은 사회에 거액을 환원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부를 하고도 불행한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 타인을 도와주는 데도 꼭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이 있다.


니시나카 변호사는 무조건 봉사하고 헌신해도 운이 트이지 않는 사람들은 '교만'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운이 나아지지 않는 결정적 이유다. 사람들을 도와줄 때도 교만 없이 겸손함을 표하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자세를 거듭 강조한다.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행동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행동했느냐가 핵심이다.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 입장권 같은 것



모든 일에는 ‘물때’라는 게 있고, 그 물때는 한번 상실하면 많은 경우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때때로 변덕스럽고 불공평하며 어떤 경우에는 잔혹한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그 호기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지금 돌아보면 그야말로 행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 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유전이나 금광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걸 찾아내고 일단 손에 넣으면 그다음은 만사 오케이, 살살 부채질이나 해가며 안일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라는 건 아닙니다. 그 입장권이 있으면 당신은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건네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취하고 혹은 버릴지, 거기서 생기는 될 몇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이나 자질이나 기량의 문제고, 인간으로서의 기량의 문제고, 세계관의 문제고, 또한 때로는 극히 심플하게 신체력의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건 단순히 행운이라는 말만으로는 미처 다 처리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최근에 3독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크게 와 닿은 부분이다. 행운이 찾아왔다. 하루키는 자신이 운이 좋게 소설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행운의 기회는 무료 입장권과 같다고 했다. 입장권을 들고 행사장 안에 들어갔다고 만사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저 행사장 안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한다.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본인의 노력과 기량에 달려있다.


나 또한 내가 속한 회사와 개인적인 삶에서 얻은 부분을 지극히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저 그때 운이 좋았었다. 하지만 행운은 하루키의 말대로 입장권이다. 여기에 대해 개인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운명도 결정되는 것 같다. 이 행운을 본인의 300% 실력과 노력이었다고 만족하는 순간 (설령 그럴지라도), 비극이 찾아오는 경우를 여럿 봤다.


운을 운으로 정확히 인지하는 순간 운 뒤에 따르는 태도가 변한다. 일하고 싶던 회사에 입사했던 건 행운이었고,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행운 입장권을 얻고 나는 행사장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행운 대신에 철저한 능력과 노력에 의해 대부분이 좌지우지됐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도 운에 대해 정확히 인지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부분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또 다른 행운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운은 타인의 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


니시나카 변호사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항상 표현한다. 운은 인연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한다. 연말에는 꼭 자필로 연하장을 매년 2만 명씩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8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메시지가 저 멀리 한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그가 평생 쌓아온 '덕'뿐이 아니었을까. 훗날 후대에게 오래도록 기억된다면 그만큼 멋진 인생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좋은 메시지를 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참고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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