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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태태 Aug 15. 2019

글 쓰는 사람에게 행복과 불행 모두가 축복이다

감정과 마주하는 글쓰기


자기감정의 주인이 되자



감정을 모르면 쓸 수 없다. 글을 쓰려면 자신의 마음,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야 한다. 그 이전에 표현할 감정이 있어야 한다. 정서가 풍부해야 한다. 감정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에 주목하고 솔직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강원국의 글쓰기> 


글쓰기에는 여러 소재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자신의 감정이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에 따라서 보는 책도 달라지고 글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감정은 글 쓰는 동력이자 좋은 글감이 된다. 글 속에서는 감정을 숨기려는 사람도 많지만 독자들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냈을 때 큰 공감을 느낀다. 이 사람도 자기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감정이 글을 넘어 전해지면서 읽는 사람은 글쓴이의 생각을 다시 알게 된다.



글 쓰는 사람의 축복 



"창조적 에너지는 권태, 불안, 긴장, 슬픔, 우울, 외로움 등
소위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글 쓰는 사람에게 행복과 불행 모두가 축복이다. 행복할 땐 행복을 누리고, 불행하다 싶으면 글을 쓰면 되니까. 불행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 힘든 세상살이에 글쓰기는 얼마나 달가운 선물인가.

<강원국의 글쓰기>


하루 안에 여러 감정이 깃든다. 과하게 텐션이 올라갔을 때도, 한 없이 우울했던 적도 많다. 예전에는 나의 이런 예민한 성격이 싫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촉수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하지만, 글을 쓰면서 이것 또한 축복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축복이라고 하기엔 개인이 너무 힘드니까. 장점으로 말해두자.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 작가와 김중혁 작가는 작가의 감정에 대해 이런 얘기를 나눴다. 작가로서 조울증은 하나의 축복과 같다는 말과 함께, 감정이 얼마나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지 두 사람은 공감했다. 그 뒤에 한마디를 덧 붙였다. 우울하지 않거나 감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면 글을 쓸 이유도 없다고. 



감정과 마주하는 글쓰기 



결국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는 것과 내 감정 상태를 잘 아는 것. (...) 나이 먹어서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내 감정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느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내 감정을 서술해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느끼는 감정을 직시하고 분별하는 힘이 생긴다.

<강원국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는 내 감정의 상태를 잘 알고 미세한 뉘앙스를 느끼는 중요성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차별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어떤지 파악하는 것. 그 사이에서 오는 '간질거림'을 알아차리는 것. 나에겐 감정이란 너무나 간질거리는 느낌이다. 때로는 감정이 너무 커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받았을 때, 그거에 맞는 책이나 영화 혹은 장소로 떠난다. 


그 자리에서 감정에 대해 써본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 왜 느끼는지. 더불어 나의 감정과 비슷한 책에 관해 쓰고 본 영화에 대해 쓴다. 내가 본 것들에는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아주 작고 소중한 감정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감정을 글로 풀어낸다. 



감정은 사람에게서 온다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Man's feelings are always purest and most glowing in the hour of meeting and of farewell.

-장 폴 리히터 Jean Paul Richter-


감정이 가장 빛날 때는 언제일까? 나는 사람을 만날 때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때 나에게 감정이 들어온다. 한 사람은 하나의 감정이다. 그들과 만날 때 일어나는 작은 스파크. 때론 설레고 때론 불쾌하기도 한 감정.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그들의 얼굴과 함께 내가 느끼는 감정이 함께 몽글거리며 떠오른다. 한 사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은 그들의 세계는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느끼는 감정까지 따라온다. 때론 감정의 폭이 너무 커져서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감정이라는 게 쉽게 전염되어서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나에겐 너무나 쉽게 들어온다. 그래서 주위에 좋은 감정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지속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들의 세계가 나의 우주와 만날 때 우리는 함께 더 넓게 팽창한다. 



유독 나에게만 필(feel)이 꽂히는 그런 느낌 '푼크툼'



프랑스 문화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과 관련된 개념으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을 제시한다. 스투디움은 작품을 보는 사람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공통적으로 느끼는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길들여진 감정이며, 작가가 의도한 바를 관객이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푼크툼은 '작은 구멍' 혹은 '뾰족한 물체에 찔려 입은 부상'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감정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살같이 날아와 박히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데, 유독 나에게만 필(feel)이 꽂히는 그런 느낌이 푼크툼이다. 바르트는 푼크툼이 없는 예술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강원국의 글쓰기>


그렇다면 나에게만 꽂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약간의 설렘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우울함. 너무 과하지 않은 감정 상태에서 나의 글은 반응한다.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꽂혔을 때 느끼는 강렬함도 사랑한다. 나의 감정이 또 다른 영감으로 이어질 때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감정을 오늘도 붙잡는다. 작고 소중한 감정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디서 이 감정이 왔는지 잘 알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존중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는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내가 된다. 


참고 <강원국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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