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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스타 Dec 24. 2019

'해야 한다'에서 '하고 싶다'로 바꾸기

should에서 want to로 바꾸기 

되어야 하는 나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공감할 법하다. 우리는 부모, 학교, 사회에 의해 끊임없이 강요받았다. 좋은 성적을 강요받고, 말썽을 부리지 않고 모나지 않게 자라는 게 '좋은 학생'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았다. 때로는 선생님께 면담에 불러,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크게 잘못을 저질렀다기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기준에서 자꾸 벗어나, 나만의 것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언짢게 보였나 보다. 나는 가고 싶던 학교를 가지 못하고, 그들은 평범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자라주기를 원했다. 


당신은 누구에게 좋은 사람인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됐다. 어른이란 무릇 본인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간다. 자신보다는 자신이 택한 책임의 '역할'로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그 역할도 자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나 있다.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가정에서는 가장의 역할을 다해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지? 나는 나에게도 좋은 사람인가?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이 세 개의 자기 간의 공존과 갈등의 장이다.

- 현실 자기 (actual self): 한 사람의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자기

- 이상적인 자기 (ideal self): 되고자 열망하는 이상적인 자기

- 당위적인 자기 (ought self): 되어야만 하는 자기 


한 사람의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자기 사이의 괴리와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들 사이의 괴리는 개인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굿 라이프>, 최인철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자기와 더 가까운 사람일까? 저자에 따르면 행복은 현실 자기와 당위적 자기의 괴리보다는, 현실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괴리 정도와 훨씬 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위적 자기를 쫓는 사람일수록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욕망보다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자기와 가까운 사람은 '자기다움'을 쫓는 사람이다. 나만의 기준을 세워서 좀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달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해봤는가?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당위적 자기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당하면서 자신의 색을 잃어간다. 때로는 사회 탓을 한다. 한국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헬조선이야. 하지만, 그전에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포기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나 자신에게도. 결국은 삶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로 살아가는 것이니깐.


해야 한다에서 하고 싶다로 바꿀 용기 


행복은 역할, 의무, 책임, 조심, 경계, 현상 유지로 대표되는 당위적 자기의 브레이크보다는 꿈, 비전, 이상, 열망으로 대표되는 이상적 자기라는 엔진을 달고 전진하는 사람에게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굿 라이프>, 최인철



<굿 라이프>에서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기준점을 제시해준다. 모든 기준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기 다움'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한데, 때로는 삶을 대하는 태도만 바꿔도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다. 첼리스트 요요 마의 이야기가 책을 덮고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는 어린 나이에 당위적 자기를 벗어나 이상적 자기를 향해 노력하는 삶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첼리스트가 되었다. 


19세 때 뉴욕에서 독주회를 했다.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었고 1년을 준비한 무대였다. 아주 잘 준비된 무대였다. 연주가 시작됐고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이 '이건 아주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살아 있지 않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때가 나의 전환점이었다고 본다.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까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때를 '해야 한다(should)'를 '하고 싶다(want to)'로 바꾼 순간으로 부른다. 완벽해야 한다가 아니라 완벽하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이 점을 59세가 아닌 19세에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당위의 브레이크가 지배하는 삶에서 이상의 엔진이 지배하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행복한 사람은 당위의 영역을 줄이고 이상의 영역을 넓히는 삶의 기술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굿 라이프>, 최인철


100점짜리 삶보다는 나를 100% 추구하는 삶



요요마는 관점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이상의 영역을 넓히는 삶의 기술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완벽하고 싶다고 생각을 바꿨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울 수 있었다고 하다니. 이 점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잘해야 한다'라는 압력에 짓눌려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으로 글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할 때가 있다. 물론 잘 쓰면 좋지만, 100점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정작 제대로 쓰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년의 목표가 있다면 '자기 다움'을 조금 더 추구하는 삶이다. 나만의 굿 라이프 기준을 세워두고 이상적인 자아를 향해 노력하는 삶이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고 도움이 될만한 것들에게 최대한 에너지를 쏟고 나머지는 비워두고 싶다. 100점짜리 삶보다는 나를 100%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나만의 기준이 없다면 그저 시간에 밀려서 이도 저도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까 봐 두렵다. 조금 더 깨어있고 하루하루 소중히 대하는 삶이 지속되기를. 



참고 <굿 라이프>, 최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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