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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태태 Jan 01. 2020

올 해는 잘 될 거야 아마두

한 해가 끝났다. 지독했던 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오사마자 책상을 창문 옆에 두었다. 창 밖을 가끔 바라보면서 일하려고 그렇게 배치했다. 하지만, 정작 여름에는 햇빛이 들어와서 블라인드를 내렸고, 겨울에는 바람이 들어와서 블라인들 또다시 내려야 했다. 책을 읽다가도 너무 추워서 정기장판이 있는 침대로 도망갔다. 


겁먹고 하지 못했던 일들


한 해가 시작된 오늘. 책장과 책상 위치를 바꿨다. 책장의 무게는 상당했지만 책을 조금 꺼내니 못 옮길만한 것도 아니었다. 10분도 채 안 되 책상을 옮겼다. 정작 해보고 나니 별거 아닌 것들인데 그동안 너무 미뤄왔다. 추워서 후드티도 걸치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책을 봤다. 그렇게 집에서도 춥게 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는데, 겨우 10분 만에 끝내버렸다. 책상을 옮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나간 해에 내가 겁먹고 하지 못 한 일들도 참 많았겠지.


옮기고 나니 별로 무겁지 않은 책장


옮기고 나니 춥지도 않고 훨씬 깔끔하다


책장이 꼼짝하지 않을 것 같아서 추위를 견뎠다. 그렇게 나는 견디는 게 많았다. 특히, 작년에는 가족을 견디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작년뿐만일까. 그동안 살아온 날들 대부분이 그랬다. 눈치를 보고 또 봤다. 툭하면 오고 가는 언쟁과 화 그리고 폭언 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가족은 가족인지라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빠의 폭력성은 전혀 줄지 않았고, 그 속에서 나와 엄마는 무기력해졌다. 매일 저녁 집에 오는 게 싫었다. 눈을 떠서는 어떻게든 새벽에 일찍 나갔지만, 일과를 끝내고는 귀가해야 했기에 그 시간들이 지옥 같았다. 


불안증과 우울증이 너무 심해졌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친구와 함께 카페를 가도 불안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직접 주문을 못 할 정도로 마음이 주저앉은 날도 있었다. 약을 먹어도 크게 도움이 되진 못했다. 약을 먹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으니까. 나는 약을 먹으면서도 스스로를 학대했다. '왜 내가 나 때문이 아닌 타인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할까?' 자책했다. 정신은 몽롱해지거나 너무 뛰는 심장박동으로 불안했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약에 취해 몽롱해지면 책을 읽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래 집중하기 힘들었다. 심장이 너무 뛰면 불안해져서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수면제를 먹고 또 먹고


너무 많이 불안해지거나 밤에 큰 소리가 오고 가거나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눈 날에는 잠에 들지 못했다. 수면제를 먹고 있었지만 잠에서 깨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수면제를 먹고도 또 한 알을 먹어야 겨우 잠들 수 있다.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는 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살지 못해서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다. 현실적인 상황을 바라보니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다 보니 많은 관계가 깨졌다.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들 간의 관계까지.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떠났다. 친구들이 초대를 해줬고, 비행기 표를 끊고 바로 떠났다. 이중에 다행인 것은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곳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추웠던 나라였지만 많은 사람들 덕에 따뜻하게 보냈다. 편안한 집보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지냈을 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족이란 무엇일까


되물어 본다.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내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내 의지로 살지도 못했다. 이제 이 기나긴 여정을 끝내보려고 한다. 가족 간의 관계는 나를 파괴시켰지만, 한 번도 스스로 나와본 적이 없다. 가족과 연결은 너무나 당연한 거였으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스스로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가장 큰 결심은 가족을 타인으로 두는 것. 내가 책임져야 할 존재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바라야 할 존재도 아닌 사람으로 두기. 더 이상 잘해보려고 노력하지 않기. 어쩔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음으로 두기. 


책상의 위치를 바꿨다. 그동안 미뤄왔던 가구 옮기기를 해냈다. 이렇게 조금씩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자.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외롭지만 결국은 혼자 이겨내야 한다. 


씽큐베이션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준원님 덕에 곧 트라우마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번 기회에 나를 더욱 알고 내가 겪었던 트라우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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