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는 거의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계속 머리를 굴리는 일로 구성된다. 일 때문에 가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고독히 읽고 쓰는 일을 한다. 내 머릿속은 정말 빠른 속도록 돌아가고 있지만, 남들이 봤을 때는 아마 가만히 타자 두들기는 정도로만 보이겠지. 누군가에겐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야말로 나의 적성에 찰떡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 노동자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지속력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몸의 움직임 없이 머리만 쓰는 것만큼 고통은 없다. 몸이 결코 오랜 시간 받아주질 못할 것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작가가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나가기 위한 걸로 '지속력'을 꼽았다. 하루키는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장편소설 작가든 단편소설 작가든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 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하루키는 실제로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다고 한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런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조금씩 작가의 능력이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강고하고 안정적이게 되었다는 걸 항상 느낀다고 한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수영을 시작했다. 2018년 1월 처음 수영장에 가서 지금 벌써 만으로 2년이 넘게 수영장에 가고 있다. 아침 7시, 주 6회. 안타깝게도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무기한 휴장이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꾸준히 다녔다. 요새는 달리기나 걷기로 조금씩 바꾸면서 매일 이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이런 수영과 달리기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매일 아침 리셋되는 기분을 느낀다. 특히, 수영은 나와 정말 찰떡인 (일과 마찬가지로 운동도 찰떡 운동이 있다) 운동이다. 매일 아침 운동이 끝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가볍다. 아침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2016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접했다.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매일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저 나도 하루키처럼 멋진 작가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운이 좋게도 오늘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일을 매일 하고 있는 셈이다. 행복한 비명이란 걸 이때 지르는 걸까.
운이 좋은 건 그저 운에서 끝난다. 결국은 운을 지나서 내 삶에서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루키는 우연치 않은 기회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평생 소설이나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어느 날 야구 경기에 갔다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데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 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그 임장권이 있으면 당신은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그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취하고 혹은 버릴지, 거기서 생기게 될 몇 가지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재능이나 자질이나 기량의 문제고, 인간으로서의 기량의 문제고, 세계관의 문제고, 또한 때로는 극히 심플하게 신체력의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건 단순히 행운이라는 말만으로는 미처 다 처리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이 책을 N회독하고 있지만, 이 문구야 말로 가슴속에 항상 세기고 싶은 부분이다. 해가 거듭하고 매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펼친다. 그러고선 계속 읽는다. 내가 가졌던 마음 가짐을 떠올르게 하기 위해서, 체력을 다시 다지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다시 정하기 위해서, 나의 노력과 의지를 굳히기 위해서. 일과 글쓰기에 대해서 갈증과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하루키를 찾는다.
하루키 덕분에 수영을 배웠고, 글을 쓰게 되었고, 이제는 달리기까지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와 닿지 않는 부분들이 해가 지날수록 정말 뼈저리게 와 닿는다. 글쓰기에 관한 고민 그리고 창작에 관한 고민. 고민을 넘어서 결과물로 보이기까지의 여정. 이 모든 부분에 공감을 한다. 하루키처럼 늙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때까지 아마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계속 보고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영원히 나의 인생 책으로 남을 것이다.
참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