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타인을 견디느냐, 외로움을 견디느냐

그 어떤 것이 난해한가

by 태스타
C8oY57iWsAAy49w.jpg 외로움에 관한 나에게 거의 완벽한 문장


외로움을 견디는 일


1.jpg


혼자 살면서 외로움은 그저 동반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제나 그랬다. 텅 빈 거리를 지나서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 몸을 뉘우던 날들이 참 많았다. 지금은 좀 덜 해졌지만, 20대 초반에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던 시절에는 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일상에 공백이 있다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사람이 많은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 당시에는 딱히 소속감도 없고 그저 붕 떠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몸과 마음이 붕 떠다녔다. 이사도 참 자주 다녔고,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때로는 혼자 지내는 고독감과 친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읽었던 책들, 봤던 영화들 썼던 글들이 수두룩하다. 어쩌면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면서도 혼자 고립되는 걸 즐기지 못했다. 요즘 혼자 다시 지내게 되었는데, 가끔 숙소에 사람들이 오다가도 거의 저녁이나 주말에는 혼자 지내는 날들이 많다. 가끔 마음이 텅 비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허무하다기보다는 허전함에 가까운 기분이다. 아마도 외로움이겠지.


타인을 견디는 일


757a81000a184caecac6a525990c576a.jpg


나는 타고나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이건 뭐 내가 기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성향이라는 게 타고난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 거라고 봐주세요. 아무튼, 타인을 견디는 것 또한 상당한 고통이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서 20대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누구를 만났거나 만나고 있거나 막 헤어졌거나 이런 상태였다. 연애 공백기는 길어야 6개월 정도였나. 지금은 덜 하지만 그 당시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끌림이 좋았다. 한 사람을 알아간 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고, 또 다른 우주를 내 안에 들이는 일이다.


그렇지만, 연애라는 게 언제나 달콤할 수는 없는 법. 타인을 견뎌야 할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상대의 지각, 상대의 투정, 상대의 무리한 요구, 상대와의 어긋나는 상식들. 이런 것들을 얼마나 견디느냐에 따라서 연애 기간이 달라진다. 사람은 다른 존재라는 걸 우리는 이성으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커플이 되면 '너는 나 나는 너'라는 마음가짐에 사로 잡힌다. 사실은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피부로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의 상식에 동의하지 못해 결국은 싸움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긴다.


외롭고 함께하고 싶어서 사람을 만났더니, 도저히 못 견뎌서 헤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인간이란... 결국 둘 중에 하나를 잘 견뎌내야 하는데, 둘 다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게 현명하지만, 사람은 또 혼자 있으면 외롭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려고 한다. 지독한 먹이사슬이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 그렇지만 연결된 존재


spike-jonze-her-joaquin-phoenix.jpg


최근에 깨달은 명제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읽으면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는 사회적 유대를 맺고 살아간다. 굳이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적 유대를 맺고 있고, 함께 좋아하는 걸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무해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은 한 없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인생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에게 주어진 부분을 더 부각시키고 그걸 확대해서 보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부족한 점과 아쉬운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사고가 정말 중요하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본디 외로운 존재고 나는 어떻게든 좋은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참고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