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증발>
"한 번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 읽기"
이번 멘토링 프로젝트에서 읽은 책 주제 선정의 배경이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경영/마케팅/사회과학/에세이 등 주로 읽는 분야를 제외시켰다.
그리고 다른 세게에서 벌어나는 일들을 읽어보고 싶었다. 한국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 건너편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권한 <인간증발>을 읽게 되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빚, 실직, 낙방, 이혼 그리고 수치심 때문에 매 년 일본인들은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증발해버린다
그들이 왜 증발했고 증발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다뤘다.
더욱 흥미로운 건 두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집필한 책이다.
#과거와의 단절 배경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과거와 단절하는 일본인들이 소개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큰 경제적 사건은 '1989년 도쿄 주식의 급락을 시작으로 부동산 가격의 폭락,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에 이어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이 당시 약 50만 명이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경기가 좋아지지 않자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고,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은행 대출이 어려워서 야쿠자가 개입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많은 대부업체들이 연간 100퍼센트가 넘는 과도한 이자율을 적용시켰다. 나중에는 일본 대부업체가 직접 대부업체를 소유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빚을 갚을 수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야반도주를 택했다. 1990년대 중반은 이렇게 야반도주한 사람들의 수가 매년 12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큰 경제적 사건이 일반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을 현상적으로 수치적으로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사실을 알고 책에 펼쳐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부채에서 시작된 게 한 사람이 과거를 단절시키게 만들었다. 그는 더 이상 가족과 만날 수도, 찾아갈 용기도 없이, 주별로 혹은 월별로 집세를 내야 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어떤 이유로 돈을 빌렸는지는 다양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삶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빚을 갚지 못해도 가족을 왜 뒤로한 채 증발해 버렸을까?
여기서 나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빚을 갚을 수 없는 건 이해하지만, 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인(가족들에겐 실종 혹은 자살에 가까운)'증발'을 선택했을까?
작가는 일본인이 견디고 있는 사회적 압력에 대해 아래처럼 이야기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다."
일본 연구서의 대표적인 책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는
일본인들은 과거의 관습 속에서 살아간다고 쓰고 있다. 일본인들은 넓은 의미에서 윗사람들(조상, 부모, 교수, 심지어 일왕)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커진다. 이 빚을 갚는 것은 체면과 관련된 문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를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질까 두려워서 소극적을 행동한다. 빚을 지고 있다는 이 독특한 감정은 의무를 요구한다. 그중 첫 번째 의무는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의무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조그만 실수에도 일본인들은 크게 자책한다. 결국 예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증발이나 자살을 선택한다. '일본인들은 실패, 수치심, 매정한 거절을 견디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다'
이런 일본인들의 특성을 다룬 부분이 책 챕터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다. 인간증발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이고, 아무래도 그들에게 일본인을 제 3자의 시각으로 보여질테니 작가의 좋은 구성인 것 같다.
두 작가의 일본 사회에 관한 의견을 들으니 그들이 왜 단절한 삶인 '증발'을 선택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수 있었다.
#사회적 현상을 개인으로 풀어내기
실종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잘 읽힌다. 일본인들이 실종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다는 게 놀라웠다. 작가가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작가가 저널리스트 출신이어서 사회적 현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닮고 싶은 구성과 기획을 갖췄다.
하나의 책을 쓴다는 게 큰 틀을 짜는 일인 것 같다. 자신이 갖고 있는 원석들을 배치하고 배열하는 일이다. 원석이 빛나도록 중간에 다른 장치를 넣기도 한다.
<인간 증발>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두 가지이다.
1. 일본인들(어쩌면 전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벌어지는 경제적 타격 이후의 삶
2. 일본인들의 속성. 극단적인 선택을 택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고용 불안, 주거난, 고령화, 청년 실업 등이 장기적으로 그리고 치명적으로 벌어졌을 때 받는 개인적인 타격이 얼마나 될지도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