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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태태 Apr 02. 2018

품위, 유머, 호기심

죽기 전까지 갖고 싶은 세 가지 

몇 년 전에 이동진의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시간이 오래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이동진과 패널은 죽음에 관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을 때까지 꼭 갖고 가고 싶은 3가지가 있다면 '품위, 유머, 호기심'이라고 얘기했다. 참 이동진스러운 답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3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죽을 때까지 가져가고 싶은 게 어떤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 일컫었기에 새삼 사람이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글쓰기', '비평 능력', '지적 능력'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새로운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해보자. 그리고 풍덩 뛰어들기 전에 발을 담궈 맛을 보자. 천천히 탐닉을 시작해 보자. #태그림


#호기심


먼저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볼까. 자의반 타의반도 아닌 내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된 게 있다면, 바로 가족이다. 아빠 자체가 굉장히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계속 무엇을 만들고 시골집에서도 목공소를 차려서 목공에 열중이기도 하고, 건설일을 오래 하다 보니 집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선수다. 


내 호기심도 알게 모르게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집을 만들고 목공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해 본 적은 있다. 귀여운 필통 하나 만들었다.) 글쎄 나는 호기심보다는 '진골'성향을 타고났다. 이 집단에 가면 이게 아니라 '저게'하고 싶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그냥 '나' 다운 일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대학생 때 에디터로 활동할 때도 디렉터에게 제안을 하나 해서 내가 만든 코너로 향후에 오프라인 잡지까지 실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수확이 있지만, 대표적인 폭망도 있다. 


물론 모두가 '주류'에 속할 때 '비주류'가 된다고 해서
좋은 일은 아니다. 


대표적인 폭망의 예로 '전공'의 부재이다. 부재라는 말을 쓸 만큼 전공 수업을 듣고 남는 게 굉장히 희박하다. 전공을 살리지 않은 것도 한 몫했지만. (살리지 못한 게 아니라 '아닌 것'이다. 언어학을 전공으로 가져갔으면 굉장히 우울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 일 밖에는 하지 못했을 거니까.)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직이 잦고 여러 일들을 벌이기 좋아하고,  이마트 시식코너에서 시식하는 음식을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나를 포함한) '호기심'을 대변하자면, 호기심은 '여러 우물'을 팔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어제 일을 위해 책을 고르던 중 창업을 한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호기심의 대가로 스타트업을 잘 꾸려가고 있다. 내막은 모르겠지만. 


책을 훑어보던 중에 촌철살인 문구가 등장했다. 

"한 우물만 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취업을 한 후 굉장히 고민이었던 게 '어떤 업계'에서 일을 할지었다. 한 회사만 30년 넘게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한 아빠는 엔지니어 기술자로 기술자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 무시했다. 그런데 난 공대를 나오지 않았고 수학을 못하는 걸. 기술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플래너, 기획자, 콘텐츠 에디터 그리고 촬영, 편집, 카피라이팅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대부분 기획자는 브랜드를 바꾸지만 난 포지션을 바꾼 특이한 케이스다.


여러 일을 접하면서 내가 호기심을 갖고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고 성향에 맞지 않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 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불변의 기술을 배우면 오랫동안 먹고 살 테지만, 점점 그러기가 어려운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때 호기심은 여러 시도를 하게 도와줄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  지루함을 못 견디는 건 어쨌든 새로움 일을 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호기심은 그런 사람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지는 사람. 혹은 던지지 않더라도 받아서 웃을 수 있는 사람 #태그림



#유머

아주 힘든 상황에서 모두가 유머를 구사할 수는 없다. 그러기도 쉽지 않다. 당장 힘들어 죽겠고 일은 산더미인데 그 순간을 즐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여러 가지 일이 들어와서 많은 일을 하고 정말 고단한 2-3주를 보내고 났더니 다시 찾아온 일상이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너무 바빴을 때는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는 순간들이 많다. 


회사를 다닐 때 팀원들이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쉬지도 못하고 일에 몸이 메어있을 때, 다들 너무 날카롭게 대응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이 되어갔다. 그때마다 야근을 대비해 저녁 식사 자리에는 한 숨이 쏟아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그나마 우리를 달래주었던 건 시시콜콜한 농담거리였다. 


왜 아재들이 아재 개그를 하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농담을 하는 건 사람밖에 없다. 사람들은 현실이 너무나 고단하기에 농담을 한다고 한다. 현실이 만만하고 그럭저럭 괜찮다면 농담할 일도 적을 테니 말이다. 


야근에 절어서 일할 때 우리를 웃게 해 준 건 커피를 기다리면서 나눴던 대화. 시시콜콜한 농담들 그리고 아무런 결론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투덜이 스머프처럼 투덜거리를 동료를 놀리거나 투덜을 부축이는 일들도 꽤나 재밌었다. 어떻게든 웃길 수 없는 상황이 많은 게 일상인데, 그때만큼 조금씩 웃을 준비라도 하는 게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품위란 무엇일까. 품위를 갖추면서 나이드는 어른들을 보면 나이 드는것 보단 '여물어 간다'라고 느껴진다. 좋아하는 강연자.    그에게선 지적인 품위 아우라가 풍겨 온다. 


#품위

품위가 있는 사람은 너그러이
'나는 이렇고 너 것도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서 품위를 갖고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을 뜻할까? 품위의 관련 어휘로는 품격, 체면, 교양, 기품 등이 있다. 나는 품위를 이렇게 본다. 경제적인 우위가 아닌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항상 품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흔히 꼰대와 다른 점은 꼰대는 무엇을 항상 강요하기에 바쁜데, 품위가 있는 사람은 너그러이 '나는 이렇고 너 것도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남을 비난하지 않는 거라 말해도 좋겠다.


누구나 자기만의 주관이 있지만 타인을 평가할 때만큼 잣대가 날카로워지는 순간은 없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저거 시작한데!, 대단하다'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아, 그거 별로라던데. 너무 많이 하지 않나?'라고 시큰둥한 반응이 오기 십상이다. 남에게는 그렇게 쉽게 판단하면서 자기의 일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처리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품위는 나를 다듬으면서 남을 빛내주는 태도다. 내 것도 좋지만 너 것도 너무 좋다. 너그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때로는 내 것보다 너 것이 훨씬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그가 가진 자질을 '품위'라 부르고 싶다.


당신이 죽기 전까지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만약 잘 모르겠다면, 왕성한 호기심,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유머, 그리고 남을 존중해 주는 품위. 이 세 가지를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삶을 조금 풍성하면서도 느슨하게 만들어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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