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79만원으로 세계일주
SNS에 여행 동영상이 넘쳐난다. 좋아하는 일에 미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여행에 미치라고 한다. 나 빼고 모두가 떠나는 것 같다. 한 때는 여행을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새 휴가 한 번 내기도 눈치 보이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만큼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여행 게이지'가 차오르지 않는다. 그저 가끔 일상을 벗어나는 '힐링'이 더 간절하다.
출퇴근이 이어지고 주말에 결혼식에 가끔 다녀오다 보면 휴일은 순식간에 사라져 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해 여행보다는 '쉼'을 택하게 되고, 일상이 흘러가는 순간을 천천히 관망한다. 그렇게 일상을 쉬면서 보내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뛰던 '여행'이 그리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매일 떠날 수는 없지만,
한 번쯤은 떠나도 좋은 게 여행이니까.
지난주에 오랜만에 연락한 대학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친구가 네덜란드에서 결혼하는데 겸사겸사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둘이 여행을 참 좋아했는데. 직장을 다니다 보니 여행보다 중요한 게 생기고,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친구도 예전만큼 여행 게이지가 차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꼭 여행을 다녀오겠다 했다. 대학 시절 휴학 하교 몇 달 유럽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 친구다. 이번에는 10일 시간을 내서 다녀온다고 한다.
어찌 됐건 오랜만에 들려온 친구의 여행 소식에 나도 기뻤다. 나는 못 가더라도 친한 사람이 대신 떠나 주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된다.
나의 첫 배낭여행은 친구와 책으로 부터 시작됐다. 친하던 멕시코 친구가 방학 때, 동남아 여행을 준비중이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떻게 혼자 여행을 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왜 못 가겠어!라는 오기가 생겨 나도 표를 끊어버렸다.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이 망설여진다면,
누가 등 떠밀어 줄 때 후련히 떠나보는 것도 좋다.
여행을 떠나다 보면 만나는 사람 한 마디, 어쩌다 읽은 한 문장이 여행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첫 동남아 여행 때 가져간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다음 해 바로 인도로 떠났다. 실제로 인도 여행 때 이 책을 읽고 온 사람을 꽤나 많이 만났다. 지금도 인도 여행 기억에 기대 살아간다. 겐지스강에서 마주친 죽음과 사람들. 네팔 국경을 넘으면서 마주친 히말라야. 히말라야 위에서 느꼈던 자연의 황홀함. 그 때 기억으로 아직까지 난 살아간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 만나는 기차와 별과 모래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 갔다. 그것이 내 생의 황금빛 시절이었다.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친구의 네덜란드 여행 소식을 듣고, 나도 홀연히 떠나고 싶어 졌다.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이 팔로우를 한 권용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 타임라인에서 보일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은 아니었다. 세계여행을 돈을 벌면서 한 사람이다. 여행 비용은 겨우 79만 원. 5년 동안 5 대륙을 다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했더니, 여행 경비를 벌려고 이 나라 저 도시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여행길 위에서 그는 '살았다'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여행 스타'들이 있다. 자전거로 세계일주는 물론, 김치버스로 여행하고, 트랙터로 여행하고, 마을버스로 여행한다. 대부분이 자비로 가거나 기업의 후원을 받아 떠났다. 하지만, 권용인은 길 위에서 일을 하며 순수 여행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5년을 '살아갔다'. 그는 여행을 떠났다기보다는 여행을 하며 '살았다'라고 말을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목표한 여행을 위해 그는 스스로를 '먹여 살렸다'.
청춘이라는 어마어마한 담보로 떠났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79만 원으로 세계일주>, 권용인
무모하다. 거침없다. 대단하다. 그에게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렇다. 그는 청춘을 담보로 홀연히 떠났다.
여행을 시작할 때 그에겐 책임질 가족도, 한국 사회에서의 아쉬움도, 무서움도 없었다. '젊었을 때 떠나자'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5년 동안 떠났고 책까지 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지는 사람이다. 다시 길 위로 떠날까? 아니면 한국에서 일을 할까? 권용인은 무엇이든 잘 할 것 같다.
여행, 떠나도 좋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단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꿈을 위해, 이상을 위해, 존재의 실현을 위해, 패기와 열정으로만 도전했던 한 청년을 관용의 마음으로 바라봐주길
<79만 원으로 세계일주>, 권용인
피식피식거리며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봤다. 캐나다에서 삼각김밥을 팔고 남미를 오토바이로 여행하던 거침없는 청춘. 그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니,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어 졌다. 그래도 누군가는 여행을 여전히 좋아하고, 여행에 많은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니. 읽다 보니 여행을 떠나는 죄책감이 없어졌다. 작은 안심과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데에 죄책감이 없지만, 쉬고 일한 만큼 즐기는 데에는 스스로의 검열이 너무나 많았구나. 올 해는 꼭 떠나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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