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고 만다
"우부메의 여름"에 이어서 교고쿠 나쓰히코의 장편소설을 두 번째 읽었습니다.
작품 두 편으로 교고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의 특징을 딱 집어서 설명하는 건 섣부른 감이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설명하고 작품을 소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일본의 전통 귀신, 요괴 등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다는 점입니다.
우부메의 여름에서는 "우부메"라는 귀신을, 이번 망량의 상자에서 "망량"이라는 귀신이 중심에 등장합니다.
이는 백귀야행 시리즈의 해결사인 교고쿠도가 음양사이자 신관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두었겠지만, 사실 어디에도 귀신, 요괴 등 미스터리한 존재가 원인은 아닙니다.
정작 그 존재는 믿지만, 교고쿠도는 그 존재의 역할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난다"라는 소신을 표하는 그가 우부메, 망량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는 존재에 대한 의심보다는 그 존재가 인간에게 미치는 역할에 집중합니다.
두 번째, 회의주의자인 교고쿠도의 사건 해결은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교고쿠도가 과학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필력 합니다.
우부메의 여름에는 양자 역학 이야기가 나오고, 망량의 상자에서는 의학 이야기 나옵니다.
그는 아마도 소설 속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회의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에 눈이 가려지지 않고,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세 번째, 소설의 전개는 공포스럽고 미스터리합니다.
책 내용 전체적으로 음산하고 미스터리합니다. 그것은 작가가 감정을 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개별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집중하고 있어서 아닐까 합니다. 전편에서는 세치구치, 이번 편에는 기바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 못하고,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범행의 동기가 귀신과 요괴가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동기를 찾는 일입니다. 왜 훔치게 되었는지, 폭행을 했는지, 살인을 했는지, 동기에 집중하고, 그럴 만하다고 인정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고교쿠도는 동기가 있더라도 그것이 사건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동기가 있고 그것을 부축이는 제3의 존재가 사건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사건 해결에서의 과학적인 태도와 벗어나는 위치를 취합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건의 경과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풀어갈 수 있어도 결국 그것을 일으키는 사람의 마음은 과학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 아닐까요?
"망량의 상자"는 가나코의 열차 플랫폼 추락 사건을 시작으로 발생하는 어린 소녀들의 토막 살인 사건, 그 배후로 의심되는 신흥 종교 온가쿠의 존재, 다시 치료 중인 가나코가 실종이 되면서 재 부각된 가나코의 친구 요리코, 문제적 남자 쿠보 슌코가 얽히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결국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부메의 여름"에 등장하는 세키구치, 교고쿠도, 에노키즈 등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결국 사건 해결은 교고쿠도의 담당이었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에서의 세키구치처럼 기바 슈타로가 작품 초반을 이끌어 가며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서지만 결국 그는 사건의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오싹함이 느껴졌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씁쓸한 맛이 계속되었습니다.
교고쿠 나쓰히코 책은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