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하지 않은 이들이 만든 세계
최근 저는 유목 민족의 역사에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 익숙하게 접해온 역사란 결국 정착의 역사, 기록된 역사였습니다.
반대로 유목민의 역사,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종종 주변부로 밀려났고,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도시, 농업, 국가, 제국을 중심에 두고 기억합니다.
성벽을 쌓고, 땅을 일구고, 제도를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앤서니 새틴은 『노마드』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정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는가?”
보통 우리는 ‘점’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 점들을 잇는 ‘선’, 즉 이동과 연결의 흐름은 자주 잊혀집니다.
그러나 역사 속 변화는 언제나 그 선을 따라 움직여 왔습니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낯선 세계와 교류했던 유목민들.
그들은 수동적으로 살아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동력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기록이 부족했기에, 그들이 남긴 유산은 과소평가되어 왔을 뿐입니다.
『노마드』는 제목 그대로, 유목민들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바벨론도, 로마도, 베이징도 아닌
사막과 초원, 계절을 따라 유랑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도시를 세우진 않았지만,
문명을 무너뜨리기도 했고, 때로는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스키타이인, 몽골인, 투아렉, 베르베르, 흉노, 튀르크 유목부족들…
앤서니 새틴은 그들을 단순히 ‘침입자’나 ‘야만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착민들이 보지 못한 자유, 유연함, 생존의 지혜를 그들의 삶에서 발견합니다.
정착인의 시선으로 보면 유목민은 늘 경계의 존재, 변방의 인물, 체제를 위협하는 타자였지만,
사실 그들은 언제나 중심을 흔들고, 경계를 넓히며, 고정된 질서를 재편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이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일까요?”
도시화와 국경은 우리에게 안정과 체계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자연과의 관계,
인간 본연의 유연함,
타자와의 조화로운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목민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직장, 학업, 생계를 위해
태어난 터전을 떠나 다른 도시와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정착인이면서도 현대의 유목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우리는,
정착의 역사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앤서니 새틴은 『노마드』에서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 그려냅니다.
그것은 혁명적이거나 급진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움직이는 존재였고,
이동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노마드』는 단순히 유목민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 위에 서 있는지를 되묻는 책입니다.
정착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은 이렇게 조용히 질문을 던집니다.
“정주가 정말 안정인가요? 이동은 정말 불안정한가요?”
그리고 저도 이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저는 지금 정착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움직임을 잃은 채 멈춰 있는 것뿐일까요?
안정 속에도 불안이 있고,
불안 속에도 어떤 안정이 숨어 있습니다.
『노마드』는 삶의 태도를 역사 속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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