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아키텍처는 전략의 거울이다
시스템 아키텍처는 단순히 코드가 배열된 기술 구조가 아니라, 전략과 목적이 녹아든 설계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스트리밍 기능과 추천 엔진을 독립된 모듈로 관리함으로써, 사용자의 시청 환경 변화나 지역별 콘텐츠 전략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처럼 아키텍처는 기술적 구성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기업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비즈니스 목표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어떤 기능을 독립시키고, 어떤 기술을 분리하며, 어느 팀이 책임을 질지는 모두 전략적 판단에 따른다. 소프트웨어 모듈러 아키텍처 또한 이러한 전략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모듈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잘게 나누는 작업이 아니라, 시스템이 어떻게 확장되고 유지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설계하는 전략적 핵심 활동이다. 본 장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지, 각 기준의 특성과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모듈화는 단순히 개발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이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쉬운 단위로 구조화하고, 각 구성 요소가 명확한 책임과 경계를 갖도록 하여 유지보수성, 확장성, 변화 대응력을 높이는 전략적 설계 방식이다. 동일한 시스템이라도 해석의 관점, 조직 구조, 기술 환경에 따라 분할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기능, 도메인, 계층, 기술 스택, 조직 구조 등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며,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설계자의 전략적 의도를 드러낸다.
예컨대 일부 기능은 자주 변경되지만, 다른 기능은 거의 변화가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쇼핑몰 시스템에서는 '장바구니' 기능은 비교적 안정적인 반면, '프로모션' 기능은 마케팅 전략이나 시즌 이벤트에 따라 자주 변경된다. 또한, 대규모 예약 시스템에서는 '탑승 관리' 기능은 고정적인 반면, '요금 계산'은 요일, 시간대, 수요 등에 따라 자주 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일한 기준만으로는 효과적인 분할이 어렵고, 복합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각 기준을 어떻게 해석하고 구현하느냐는 설계자의 전략적 안목과 역량을 드러낸다.
가장 직관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분할 방식은 기능 단위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그인, 결제, 배송, 사용자 관리 등 사용자의 행동이나 서비스 흐름에 따라 모듈을 구분한다. 쇼핑몰의 경우 결제 시스템은 다양한 할인, 포인트, 쿠폰 적용 등으로 변경이 잦고 복잡도가 높아 별도의 모듈로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방식은 사용자 관점과도 잘 부합하고, 시스템 구조가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동일한 데이터를 여러 기능이 동시에 사용하거나, 기능 간 강한 의존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모듈 간 결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로 인해 데이터 흐름이 복잡해지고, 변경 시 파급 효과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기능 기반 분할에는 인터페이스 설계와 데이터 흐름 분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기능이라는 개념은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비즈니스 부서에게 기능은 '청구 관리', '고객 응대' 같은 업무 단위일 수 있지만, 개발자에게는 '로그인 처리', '데이터 검증' 같은 기술 단위일 수 있다. 기능은 계층적으로 나뉘며, 어떤 수준에서 기능을 정의할지에 대한 기준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계층 기반 분할은 수직적인 기술 구조에 따라 시스템을 나누는 방식이다. 프레젠테이션 계층, 비즈니스 로직 계층, 데이터 접근 계층처럼 기술적 책임과 역할을 기준으로 구조화한다. 대표적으로 MVC(Model-View-Controller)나 3-tier 구조가 있다.
이 방식은 역할 분리가 명확하고 다양한 플랫폼 대응, 이식성 확보에 유리하다. 예컨대 웹과 모바일 앱에서 UI 계층만 따로 구성하고, 로직과 데이터 계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계층 간 의존성이 강하면 하나의 변경이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계층 분할은 기능이나 도메인 분할과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층 구조는 일반적으로 상위 계층일수록 추상화 수준이 높고, 하위 계층일수록 구체적이다. 각 계층은 하위 계층의 서비스를 받아 상위 계층에 제공하는 구조이므로, 분할 시 명확한 방향성과 역할 정의가 중요하다.
도메인 주도 설계(DDD, Domain-Driven Design)는 비즈니스의 흐름과 맥락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나누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험 시스템의 경우, '계약', '청구', '심사', '지급' 등 각 도메인 별로 모듈을 나누면 해당 부서의 책임과 업무 흐름이 자연스럽게 정렬된다. 도메인 단위는 비즈니스 의미와 조직 구조를 반영하므로 직관적이며,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하고 유지보수성이 뛰어나다.
기능 기반 분할과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도메인 분할은 기술이 아닌 비즈니스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라본다. 규모가 크고 경계가 명확한 시스템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단점은 초기 비즈니스 분석이 충분하지 않으면 적절한 구조를 설계하기 어렵고, 기존 시스템을 리엔지니어링하는 경우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가 빠르면, 과거 도메인 기준으로 설계된 모듈이 현재의 업무 흐름과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도메인 구조는 정적이지 않으며 지속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Conway의 법칙은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시스템 구조에 반영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팀 단위로 시스템을 분할하고, 각 팀이 하나의 모듈이나 마이크로서비스를 운영한다.
대규모 서비스를 운영하는 조직에서는 수백 개의 마이크로서비스를 수십 개의 소규모 팀이 각각 책임지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각 팀은 독립적으로 배포와 운영을 수행하며, 전체 시스템의 확장성과 장애 복원력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배포 독립성, 팀 책임의 명확성 등 장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조직 구조가 변경되면 시스템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기능이나 기술적 최적화와 충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소프트웨어는 유연하고 빠르게 진화하는 반면, 조직 구조는 상대적으로 고정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는 경우, 기술 스택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나눌 수 있다. 프론트엔드, 백엔드, 데이터 분석, AI 처리 등 각 기술 영역을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빌드되고 배포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고, 빌드 및 배포 단위가 명확하여 개발 효율이 높다.
하지만 기술 기준만을 우선할 경우, 비즈니스 흐름과 단절되며 유지보수 시 컨텍스트 전환이 잦아질 수 있다. 기능 또는 도메인 기반 분할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술 스택 기준의 분할은 기술적 효율성과 비즈니스 적합성 간 균형을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
현대적인 시스템에서는 복합 기준을 적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 시스템 제어는 도메인 단위로 기능을 나눈 뒤, 브레이크 제어, 배터리 관리, 주행 보조 기능을 계층별로 나누고, 기술 스택에 따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경계를 분리하여 설계된다.
또 다른 예로,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주문, 결제, 배송 도메인을 중심으로 상위 구조를 잡고, 사용자 행동 흐름에 따른 기능 분할, 기술 스택별 세부 모듈화, 전담 조직 운영까지 복합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사진 기반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콘텐츠 업로드, 피드 생성, 피드백 처리를 도메인 단위로 나눈 뒤, 백엔드 API, 캐시 계층, 스트리밍 계층으로 기술 기반을 세분화하고, 글로벌 인프라로 확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AI 서비스 플랫폼에서는 데이터 수집, 모델 학습, API 서빙, 모니터링 등 도메인을 기준으로 분할하고, 각 기능을 컨테이너화하여 기술별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이처럼 복합 분할은 다음 흐름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성된다:
- 도메인 단위로 대분류
- 기능 또는 계층 기반으로 하위 분할
- 기술 스택 기반 세부 모듈화
- 조직 구조 기반 배포 및 운영 분배
복합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모듈화는 다음과 같은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 조직 구조만을 반영해 민첩하지 못한 구조
- 마이크로서비스 도입 후 테스트 비용 및 복잡도 증가
- 기술 기준만 적용해 비즈니스 흐름 단절
- 자주 변경되는 기능이 여러 모듈에 흩어져 전체 영향도 증가
이에 따라 다음 질문들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 자주 변경되는 기능이나 영역은 어디인가?
- 어떤 기능은 독립적 운영이 필요한가?
- 동일한 기술을 서로 다른 채널이나 방식으로 제공해야 하는가?
- 의사결정 단위는 어디에서 나뉘는가?
- 협업이나 운영의 병목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모듈화는 단지 코드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시스템의 전략을 구현하는 설계자의 언어다. 각 모듈은 명확한 책임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하며, 복합적인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경계와 인터페이스는 명확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구조가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에 설계자의 의도가 유지되려면 구조적 명세화와 반복적인 점검이 필수다. 인터페이스 정의, 책임 문서화, 정기적인 리팩토링은 전략적 모듈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듈화란 기술을 넘어, 변화에 대한 조직의 태도와 전략적 결정을 반영하는 언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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