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가장한 블랙코미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정통 미스터리를 기대했다면, 아마 크게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의 외형을 빌려 쓰인, 냉소와 풍자가 가득한 블랙코미디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을 통해 본인이 평소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설이라는 무대를 활용해, 비틀고 꼬고 비웃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이유는, 그의 탁월한 필력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된 키워드는 '소설가'입니다.
각 단편은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실존 작가의 자전적 색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각 단편을 짧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금대책 살인사건〉 세금 공제를 위해 허위 경비를 꾸미는 작가와 편집자의 이야기.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가 날카롭고 우습게 그려집니다.
〈이과계 살인사건〉 지나친 과학 지식과 현학적 설명으로 가득한 추리소설에 대한 풍자. 반전도 훌륭하지만, 장르의 ‘유식한 허세’를 꼬집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범인 맞추기 살인사건〉 소재가 고갈된 한 작가가 여러 편집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범인을 맞히는 자에게 원고를 주겠다"는 게임을 벌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아이디어를 훔치기 위한 꼼수였다는 설정이 유쾌합니다.
〈고령화 소설 살인사건〉 고령의 작가, 고령의 편집자, 고령의 독자.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풍자한 이야기로, 웃픈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예고소설 살인사건〉 자신이 쓴 소설대로 살인이 벌어지는 작가. 도덕과 명예, 성공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대가로 성공할 수 있는가’를 되묻습니다.
〈장편소설 살인사건〉 장편 분량을 무조건 선호하는 출판계의 생리를 꼬집는 이야기. 마지막 반전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마카가제 살인사건〉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이야기지만, 생략된 서술 속에 풍자적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독서기계 살인사건〉 책을 읽고 요약하고 서평까지 써주는 AI 로봇의 등장. 작가도, 독자도 결국 기계에 의존하게 되는 씁쓸한 풍경이 그려집니다.
이 책은 재미있다고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합니다.
속된 말로 “골 때리는” 소설입니다. 정통 추리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엔 작가가 쌓아온 회의, 풍자, 냉소, 그리고 유머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읽는 작품임에도,
“이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작가라니…”
감탄이 먼저 나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한다면,
또, 소설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장르 자체를 비트는가에 흥미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히가시노게이고 #추리소설가의살인사건 #추리소설 #단편소설 #블랙코미디 #메타소설 #책추천 #장르해체 #일본문학 #독서일기